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여름 세시풍속 가운데 음력 6월 15일의 ‘유둣날’이 있다. 잊혀져 가고 있는 고유한 풍속의 하나다.

유두(流頭)는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뜻으로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줄임말이다. 동쪽의 맑은 시냇가에서 머리 감고 몸을 씻는다는 의미인데 경상도에서는 ‘물맞이’라고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동쪽은 청(靑)이며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곳이라고 믿기 때문에 ‘동쪽에서 흐르는 개울(東流)’을 통해 여름철 질병과 더운 날씨를 이겨냈다. 아울러 조상과 농신에게 햇과실과 음식을 차려 제를 지냄으로써 안녕과 풍년도 기원했다.

유두 풍속이 언제부터 유래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헌상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부터다. 이는 고려 명종 때 학자 김극기의 ‘김거사집(金居士集)’에 “동도(東都, 경주)의 풍속에 6월 15일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쳐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했다.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경주 풍속에 6월 보름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을 씻어 버린다. 그리고 액막이로 모여서 술을 마시는데 이를 유두연(流頭宴)이라”고 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여인들의 물맞이 장소로 서울 정릉 계곡, 광주 무등산 물통폭포, 제주도 한라산 성판봉 폭포 등을 적합한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유두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유두천신(流頭薦新)을 들 수 있다. 수박, 참외 등과 국수와 떡을 만들어 조상의 사당에 제를 올리는데 이를 ‘유두날 새 것을 올린다’는 의미다. 

이 시기는 벼가 어느 정도 자랐으므로 들짐승, 해충과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하여 풍년 들기를 바라며 고사를 지낸다. 지역에 따라 ‘논둑제’ ‘용신제’ ‘유두고사’라 부른다. 제물은 논 주인이 밀떡, 과일 등을 장만해 논둑이나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용신님네! 농사지어 놓은 것 짐승들이 못 뜯어먹게 하고, 쥐나 뱀이 논둑에 구멍을 뚫지 못하게 하고 농사가 잘되게 해 주십사!”라고 빌면서 절을 했다. 

유두는 조상신이나 농신만을 위한 날은 아니었다. 유두천신을 마친 후 일가친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 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후 햇과일과 여러 가지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를 유두잔치라고 했다. 선비들은 산천 계곡이나 정자를 찾아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겼다.

유두의 시절음식으로는 유두면, 건단, 수단, 상화병(霜花餠) 등이 있다. 이날은 특별히 국수를 만들어 먹는데 이를 유두면(流頭麵)이라 한다. 특이하게 구슬처럼 만들어서 먹으면 더위에 고생하지 않고 오래 산다고 했다. 

또한 오색(五色) 물을 들여 세 개씩 포개어 색실로 꿰어 허리에 차거나 문설주에 걸었다. 잡귀의 출입을 막고 액을 물리친다는 속설 때문이다.

전통 농경사회 세시풍속 유둣날의 의례적인 요소는 오늘날 거의 중단됐다. 그나마 ‘물맞이 풍속’은 여름 휴가철 피서로 전승돼가고 있어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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