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은 누각과 정자의 합친 말이다.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는 자연 속에서 여러 명이 또는 혼자서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을 하던 건축물이다. 옛 선비들은 마음의 여유를 느끼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누정을 찾았다. 이곳에 담긴 선조들의 삶을 알아보자.

 

▲ 오늘날에도 궁술 연습을 하는 황학정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뒷산 인왕산 기슭에 누정 하나가 세워져 있다. 대한제국 때 누정인 황학정(黃鶴亭)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산세 좋은 이곳은 그야말로 활 연습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황학정 입구의 ‘활터 구간’이라는 푯말이 이곳이 어떤 곳 인지를 대신 알려줬다.

활에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겨 있다. 선조들은 국궁을 통해 국토와 얼을 지켜왔다. 활 이야기가 얽혀 있는 황학정은 어떤 곳일까.

◆궁술 연습하던 ‘황학정’

황학정은 1898년(광무 2) 고종의 어명으로 경희궁 회상전 북쪽 담장 가까이 세웠던 궁술 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었다. 황학정은 1922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 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불하될 때 사직공원 북쪽 등과정(登科亭) 옛터인 현 위치에 이건했다.

등과(登科)란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른다는 뜻이다. 따라서 선비들에게는 입신양명의 첫 단추였다. 전국 활터에는 무과시험 준비를 하는 선비들이 가득했다.

▲ 황학정에 걸려 있는 고종의 어진 ⓒ천지일보(뉴스천지)

등과정은 경복궁 서편 인왕산 기슭 옥동에 있던 ‘등용정’, 삼청동의 ‘운용정’, 사직동의 ‘대송정’, 누상동의 ‘풍소정’과 함께 인왕산 아래 서촌 5사정(五射亭)이라 불렸다. 5사정을 비롯한 서울에 있던 이름 있는 활터는 갑오개혁 이후 무과시험이 폐지되면서 하나둘씩 사라졌다. 활쏘기를 연습하던 선비들은 활터를 떠나게 됐다. 수천년 동안 이어지던 사예의 맥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이에 고종황제는 사예의 맥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드디어 황학정을 열었다. 고종황제는 백성들에게 활쏘기를 장려했다.

또 몸소 황학정에서 활을 쏘았다. 황색곤룡포를 입고 시위를 당기는 고종황제의 모습은 마치 황금빛 학이 나는 모습과 같았다고 했다. 시위에 걸어 보내는 하나하나의 화살마다 고종황제는 꿈을 실었다. 대한제국의 백성들이 다시 일어서는 꿈, 버려진 활터에 다시 선비들이 돌아오는 꿈. 그리고 대한제국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당당히 일어서는 꿈 등이다.

고종황제가 이렇게 활쏘기를 중요시 생각했던 이유는 활쏘기가 우리 민족에게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 황학정에서 활 시위를 당기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궁술 행사

황학정의 활터는 전국에서 유명했으며, 광복 후에 계속 사용됐다. 그러다 1950년 6.25전쟁으로 건물이 파손돼 활쏘기가 중단됐고, 이후 다시 중수돼 활터로 사용됐다. 과녁은 전방 약 145m 지점에 있으며, 1977년 일부 보수공사를 했다.

고종이 사용하던 활 호미(虎尾)와 화살을 보관하는 전통이 황학정에 보관돼 오다가 1993년에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황학정은 사정 건물의 예로서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궁술을 계승하기 위해 계속 궁술행사가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다.

실제 오늘날에도 이곳에서 국궁동호회 회원이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활과 화살을 든 회원들은 일렬로 서서 과녁을 향해 활을 한 명씩 당겼다. 먼 거리임에도 활이 과녁에 명중되는 걸 보니, 그 옛날 선조들이 이곳에 서서 활을 쏘던 모습이 절로 연상됐다.

국궁동호회 회원인 장동열씨는 “공자는 활을 중요시했다. 그 덕에 조선시대에서 활이 살아남았다”며 “신식무기가 등장하면서 활이 사라질 뻔했지만, 양반계층에서는 활을 중요시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의 국궁하시는 모든 분이 우리나라 전통무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활을 연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황학정 아래에는 국궁전시관도 있었다. 조선시대 궁술과 관련된 책, 고구려와 백제, 신라 등 시대별 화살이 전시돼 활에 얽힌 역사를 알 수 있었다. 또 일본, 중국, 몽골의 활 문화도 함께 소개돼 나라별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궁 체험 공간도 함께 운영돼 아이들이 역사를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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