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방송개혁시민연대 정책기획위원장

김정일의 갑작스런 방중을 계기로 불거진 한중 간의 외교적 마찰이 예사롭지가 않다. 청와대 대변인은 한중 간에 갈등이나 균열은 없다고 뒤늦게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양국의 수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진 대로 이 문제는 잠재된 앙금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국가나 개인이나 감정이 없을 수는 없으며 특히 이번 김정일 방중문제에 있어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중국 측의 태도에 서운한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국가 간의 외교를 책임진 정부의 최고 지도층들은 이런 때일수록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국가적 실리를 먼저 생각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외통부 장관은 공식적으로 주중대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하고 더욱이 통일부 장관은 언론에 공개된 어색한 분위기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요하는 듯한 표현을 하는가 하면 중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천안문’이라는 단어를 실수로 말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보여 주었으며 끝내는 중국의 배석한 공사참사관이 “녹음도 하고 촬영도 합니까,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한다.

국민적 감정에서야 장관들의 말이 백 번 지당하고 속 시원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한국을 대표하는 고위 각료가 민감한 외교 현안에 대해 화풀이 하듯 대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세련되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혹여나 장관들의 이런 행보가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내용 생색내기 외교행태였다면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일로 인해 중국은 외교부 당국자가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하였고 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언론매체를 통해 한국정부 고위인사들의 발언을 맹비난 하고 나섰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중국정부의 비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왜 이렇듯 최고외교전문가라는 고위인사들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하는 안타까움에 속이 상한 것이다.

탈이데올로기 시대인 현대의 외교 화두는 실리외교 임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정부도 국민도 언론도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랜 역사 속의 대중국 관계는 차치하더라도 근현대사 속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의 대중국 관계를 통해 현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시 북한을 지키기 위해 13만 명의 중공군을 희생한 북한의 혈맹이며 역으로 우리와는 수많은 국군과 국민을 살상한 철천지원수 관계였다. 지금도 중국은 북한이 생존을 의탁한 생명줄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급격히 가까워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국의 실리를 바탕으로 한 외교적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중국을 너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며 세련되고 정치한 외교를 펼쳐야 하는 현실적인 과제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