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학생들이 즐겨 보는 개그콘서트에 ‘아무 말 대잔치’란 코너가 있다. 개그맨들이 나와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말을 던져 웃음을 유발하는 코너다. ‘아무 말 대잔치’의 국어사전 정의를 보면 ‘뇌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생각 없이 막 내던지는 말을 뜻한다’라고 되어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되는 교육관련 정책들을 보면 개콘의 ‘아무 말 대잔치’ 코너를 보는 듯하다.

7월 10일 조희연 교육감이 “수업의 혁신은 곧 평가의 혁신, 중고교 시험에 ‘오픈북 테스트’를 포함해 혁신적 평가 방법 도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픈북 테스트는 교과서나 관련 자료를 보면서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암기력보다는 사고력과 응용력 등을 평가하는 데 적합하다. 어느 정도 기초적인 공부를 마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 제도다.

학생들마저 “전체적으로 시험 점수 올라가면 분별력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고, 학부모들은 “무조건 암기를 나쁘다고 해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와선 안 된다. 정량적 비교가 불가능한 평가 방식으로 공정성 시비가 잦을 것이다”며 반발한다. 교사들은 “오픈북 평가로 인해 반드시 암기가 필요한 내용조차 암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수학도 기본공식은 암기해야 응용이 가능하다”라고 지적한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7월 18일 “수능에 절대 평가를 도입하겠다. 현행 수능은 객관식 상대평가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로 학생 간 무한 경쟁, 획일적인 점수 위주 선발, 수능 대비 문제풀이 수업 유발 등 여러 한계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대학입시의 진짜 병폐를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학입시의 진짜 문제는 획일적인 점수 위주 선발이 문제가 아니고 ‘학종’으로 대변되는 수시선발이 74%인 것이 문제라고 학부모와 학생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학종’에 유리한 비교과 내신을 만들려고 사교육 컨설팅에 의존해 ‘학교생활기록부’를 ‘학교생활 소설부’로 각색하는 데 등골이 빠지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대학들은 학생부종합전형을 더 강화시켜 우수한 학생을 골라내려 할 것이다. 그로 인해 비교과 내신경쟁이 더 치열해지며 사교육에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에 엄청난 괴리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절대평가,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은 언뜻 보면 그럴 듯해 보이나 수험생과 학부모를 금수저와 흙수저로 가르는 전형이다. 수능에서 경쟁이 불가피한 이상 오직 시험 점수로만 합격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공정한 정시모집을 확대하길 원하는데 정부는 반대로 간다고 발표한다.

7월 25일에는 ‘1수업 2교사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교사의 정원을 점점 축소시켜야 하는데 1교실 2교사제를 위해 교사를 증원하겠다고 한다.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를 줄이고 정규직 교사를 늘리기 위한 교사 증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1교실 2교사제를 위해 교사를 증원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교사들이 “효과가 없다, 불편하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지난 정부에서 1학급 복수담임제를 시행해서 교사끼리 갈등만 조장하다 폐지되고 말았던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중고교 수업에서 ‘학생 참정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정치토론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마저 정치에 일찍 참여시켜 교육감선거 투표권을 주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교육을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는 것은 교육정책 및 제도의 수립은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5년 임기의 대통령, 언제 바뀔지 모르는 교육부 장관이 교육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할 일이 아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인 우리 청소년들에게 가기 때문이다. 수업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키겠다는 교육정책이 학력저하로 나타났던 ‘이해찬 세대’란 말이 지금도 고유명사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육정책을 바꾸려면 먼저 이해 당사자인 학부모, 학생, 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자신의 정치소신을 ‘아무 말 대잔치’ 식으로 발표한다면 정부가 바뀌면 또 다시 뒤집어질 가능성이 크다. 범국가적인 ‘국가 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이 위원회에서 장기적인 교육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 교육부 장관이 만족하는 정책이 아닌 학부모, 학생, 교사가 만족하는 정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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