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dhi-sattva), 팔리어 보디사타(Bodhi-satta)의 말을 한자로 음사한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준말이다.

‘보디사트바’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확정된 이’라는 뜻이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전의 상태, 또는 현세나 내세에서 부처가 되도록 확정되어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보살은 “지혜와 덕성과 행동이 모두 탁월하여 현재는 부처가 아니지만, 반드시 부처가 되도록 확정되어 있는 후보자”란 의미도 갖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든 불교인은 보살이며, 또 마땅히 보살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구제에 앞서 남의 구제를 위해 힘쓴다는 것이 바로 보살의 진정한 실천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불교에서는 보살의 명호를 가진 분이 많으며 대승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의 절에서는 여신도(女信徒)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도통군자(道通君子)’란 무엇인가. 위에서 말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나 ‘도(道)를 통했다’는 것은 결국 같은 의미이다. 그들은 말씀을 바르게 알고 깨달아 통달하여 말씀과 하나 된 사람, 모든 도(道)를 넘나들며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불교의 심우도(心牛圖)에 나오는 동자(童子)가 도를 깨달아 도통군자가 된다. 기독교 성경에 보면 요한계시록 7장에 각 지파 일만 이천씩 열 두 지파 십사만 사천인이 나오는데 그들이 바로 도통군자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말씀이 난하주에서 ‘도(道)’라고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성령(고전 2:10)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 곧 도(道)를 깨닫게 해주신다.

초림 때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 14:6)”고 하셨다.

하나님은 말씀이시요, 그 말씀이 하나님(요 1:1)이시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던 예수님(요 1:14)께서 재림 때 다시 오셔서 그 말씀을 길 삼아 하나님의 인(印)을 쳐주시니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하여 새 언약을 지킨 자들이 바로 인(印) 맞은 자, 도통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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