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명! 조정 소식을 속히 전하라… 조선시대 신문 ‘조보’ ⓒ천지일보(뉴스천지)

신문기자 역할한 기별서리
어명·상소 등 조정소식 적어
농경 중요 시 날씨도 담겨
구독층, 신분 높은 양반·관리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예, 발표하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조선시대 왕의 비서실 역할을 하는 곳인 ‘승정원’ 관리가 ‘조보소(조방)’에 나가 그날의 기사를 발표하자, 사람들이 재빠르게 기사를 손으로 받아 적었다. 이들은 각 관청에서 나온 ‘기별서리(奇別書吏)’였다. 기별서리는 짧은 시간 안에 불러주는 기사를 베껴 쓰기 위해 ‘기별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를 사용했다. 이들의 역할은 조선시대 신문인 ‘조보(朝報)’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최초의 신문하면 ‘한성순보’를 많이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이고, 최초 신문은 조선 시대 조보, 기별지라 불리던 ‘조정의 소식지’였다. 조보의 기원에 대해 차상찬은 조광(朝光)에 쓴 ‘조선신문발달사’에서 신라 시대로 추정했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조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종실록’ 제38권의 중종 15년(1520) 3월 26일자에 실려 있는 기록이다. 이 조보는 중종 이후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행돼 왔으며, 1895년 2월 ‘관보(官報)’로 바뀌면서 없어졌다.

◆조정의 소식 담은 ‘조보’

조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오늘날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소식이 모두 실려 있는 게 아니라 조정의 소식이 담겼다. 특히 왕의 명령에 대한 기사가 많이 실렸다. 왕에게 올린 상소 내용, 조정의 결재 사항, 관리의 승진과 사망 등의 내용도 담겼다. 날씨, 계절의 변화에 대한 내용은 꼭 들어갔다. 농경사회인 조선시대에는 날씨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네 발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진 병아리의 출현’ ‘큰 우박이 내려 날아가는 새와 사람을 죽인 사건’ ‘흰 무지개가 태양을 꿰뚫었던 천체의 이변’ 등 천재지변과 관련된 소식도 실렸다. 이 같은 내용 끝에는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에 하늘이 노한 것’이라는 식의 평을 덧붙였다고 한다.

◆‘기별서리’와 ‘기별군사’

조보소에서 내용을 재빨리 옮겨 적은 기별서리들은 자기가 속한 관청으로 눈썹 휘날리도록 달려갔다. 여기서 ‘기별’이란 너무 작은 양의 음식을 먹었을 때 ‘간에 기별도 안 간다’라고 할 때 쓰는 그 기별로, 기별서리란 ‘소식을 전하는 관리’라는 뜻이다. 기별서리가 바로 오늘날의 신문기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기별서리로부터 조보를 받은 각 관청에서는 필요한 만큼 내용을 더 베껴서 적었다. 그리고 기별군사(奇別軍士)에게 전달했다. 기별군사는 조보 뒷면에 받을 사람의 이름, 직책, 동네 이름 등을 간단하게 적은 후 배달했다.

조선시대에 신문은 누가 보았을까. 조보를 보는 사람은 주로 관리나 신분이 높은 양반이었다. 한양에 있는 양반들은 매일 아침 조보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지방의 관리나 양반은 거리에 따라 5~10일 정도 걸려 조보를 받았다. 제주도 같은 섬 지역에서는 한 달 정도 걸렸다고 한다.

조보에 대한 구독료는 얼마였을까. 조선 시대에는 오늘날 동일한 구독료를 내는 것과 달리, 직책이 높은 관리일수록 구독료를 더 냈다고 한다. 이 돈을 모아 기별서리나 기별군사에게 봉급을 줬다. 이렇듯 오늘날처럼 조선시대에도 기자인 기별서리와 배달원인 기별군사를 통해 조정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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