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1970년대 초 요즘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필자의 국민학교 학생 시절, 당시 친했던 한 친구가 미국으로 전 식구가 올해 안에 ‘이민’을 떠난다는 말을 놀이터에서 듣고, 친구와 헤어진 후 귀가해 너무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에는 미제 연필 하나만 있어도 으쓱하던 경제개발 초기의 가난한 시절이었는데, 가족 전체가 세계 최대 부국인 미국으로 이주하여 산다는 것은 참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이민(immigration)’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immigration’의 어원은 ‘안으로’의 뜻인 ‘in’과 ‘움직이다’는 뜻인 ‘migrate’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외국여행시 공항이나 항구에서 외국으로의 입국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여권을 가지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immigration office’ 박스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 역시 ‘이주 ’‘이민’의 역사인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바이다. 두 종교 모두에서 선조로 추앙받는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세계 4대 문명 발생지인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의 우르에서 여호와의 인도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이주했으며, 두 종교의 탄생은 각각 그의 후손인 야곱과 이스마엘로부터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경우에도 기득권 세력의 박해를 피하고자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하여 이슬람교의 기초를 닦은 바 있다. 이른바 ‘성스러운 이주’라는 의미의 ‘헤지라’로 불리는 이 ‘이주’가 일어난 해를 이슬람 달력의 원년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을 보아도 그들이 본 ‘이주’를 얼마나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콜롬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이후 신대륙을 향한 유럽 개척자들의 도전적인 ‘이주’는 유럽중심 문명의 탈피를 불러왔으며, 그 후손들은 강한 의지와 개척정신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강국을 건설했다.

역사의 발전은 새로운 것 혹은 부족함을 채우려는 욕구를 이루고자 ‘이주’란 방식을 통해 상당 부분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이 같은 흐름은 IT의 세계에서도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고 또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주’란 용어보다 ‘이전’이라는 의미가 강한 ‘마이그레이션’이 쉼 없이 발생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보다 나은 것, 편리한 것, 강한 것을 향한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본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IT기술에서 하나의 운영환경으로 좀 더 개선된 혹은 낫다고 여겨지는 다른 운영환경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윈도우 95에서 98로 다시 ME로 업그레이드하거나, 윈도우NT서버에서 윈도우2000서버로 옮기는 것과 같이 하나의 컴퓨터 운영체계에서 보다 나은 운영체계로 옮아가는 과정도 또한 ‘마이그레이션’이라 볼 수 있다.

‘마이그레이션’에는 단일 시스템에서 다른 단일 시스템으로 옮아가는 소규모 ‘마이그레이션’에서부터 많은 시스템들이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이나 네트워크로 옮아가는 대규모 ‘마이그레이션’에 이르기까지 규모나 형식이 다양하다. ‘업그레이드’가 동일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특정 기능을 고도화하는 차원의 표현이라면 ‘마이그레이션’은 시스템 자체의 변경을 의미하므로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게 된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전송방식 또한 DSL방식(아날로그형 데이터 전송방식) 계열에서 FTTH(광전송)방식으로 전환됐으며, 최근 2년 내에는 기가인터넷이 등장해 FTTH방식을 대체하고 있다.

데이터를 전송하는 파이프인 네트워크 분야에서도 순수 동케이블에서 고주파를 실을 수 있는 동축케이블로 진화했고, 보다 큰 초고주파를 장거리로 손실없이 전송하기 위해 빛을 이용해 신호를 전송하는 광케이블 방식이 등장해 최근에는 국내 장거리 네트워크는 수백 기가(Giga)급, 혹은 그보다 큰 테라(Tera)급 전송 네트워크가 등장했다. 고화질 영화 1편의 용량이 대략 4기가 정도이므로 장거리 네트워크를 통해서 1초에 영화 수백편을 전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64K DRAM에서 시작한 반도체메모리 산업은 이제 기가를 넘어 NAND 플래시메모리로까지 진화했다. 참으로 놀라운 IT ‘마이그레이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 IT의 모든 사안을 삼켜 버리듯이 강하게 이슈가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또 한번의 혁명적 ‘마이그레이션’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마이그레이션’을 원하고 이를 위해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IT최강국을 지속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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