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유전자(遺傳子, DNA)는 우리의 모습이나 성격은 물론 질병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수명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생명의 본질이다. 유전병은 생명의 바탕이 되는 유전자에 이상에 생겨 나타나는 질환을 일컫는 말이다.

암, 당뇨병, 비만, 심장병, 동맥경화 같은 많은 질병들은 물론 전염병에 대한 민감성, 대머리의 탈모, 음식물이나 꽃가루 등에 대한 과민반응(알러지) 등의 발생에 유전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 상식으로 다가와 있는 유전병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람의 유전자 수는 약 2만 5천개에서 3만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 밝혀진 유전병 외에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전병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생명공학 기술인 유전자 조작법을 이용해 유전 현상의 조절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유전자 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유전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유전자의 변이는 일상에서 접하는 화학물질이나 환경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암 발생의 유전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특정 암이 한 가족 내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 유전성 암증후군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암의 발생원인 조사에서 암 환자의 직계가족에서 20% 넘게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암에 대한 감수성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방암, 전립선암, 결장암 등의 발생에는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며, 췌장암의 경우 가족 내 유전성이 5~1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췌장암은 흡연, 고칼로리 식품 또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많은 음식물 섭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자(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의 장애로 나타나는 당뇨병도 유전성이 높은 질병이다. 자녀들에서 나타나는 당뇨병 발생의 유전성 조사에서 발생률이 부모 모두가 당뇨인 경우 58%, 부모 중 한 사람이 당뇨인 경우 27%, 그리고 부모가 모두 정상일 경우 0.87%로 나타나 유전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유전적 소인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 당뇨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당뇨병은 질환 자체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당뇨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 유전돼 나타나는 것이 때문에 생활 습관이나 환경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당뇨병을 유발하는 비유전적인 인자로는 비만, 바이러스 감염, 임신, 노화, 정신적 스트레스, 약물복용 등을 들 수 있는데, 그중에서 비만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당뇨병의 원인을 잘 조절할 경우 당뇨병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전쟁을 선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매우 높은 비만(肥滿)의 유전성이 어느 정도일까. 비만은 주로 식생활이나 생활습관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유전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당뇨환자 779명과 정상인 3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비만에 특정 유전자(TGFBI)가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는 만성질환인 당뇨병과 비만의 유전적 소인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은 물론 유전 진단, 개인별 맞춤의약 개발 등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고 있는 대머리의 유전성은 어떠할까. 대머리는 부계(父系) 유전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20세 남성의 경우 아버지나 외할아버지가 대머리가 아닐 때 탈모의 발생 확률은 10% 정도이지만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대머리이면 그 확률은 35%로 높게 나타난다. 대머리를 유발하는 유전자는 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대머리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특정 유전자의 발현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인데, 대머리의 유발 요인들로는 나이, 호르몬, 스트레스 등이 지적되고 있다.

암, 당뇨병, 비만, 대머리와 같은 유전적 소인에 따른 질환의 경우 질병 자체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 유전돼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유전병의 발생은 비유전적 요인인 생활 습관이나 주위 환경을 잘 다스릴 경우 발생 확률을 낮추거나 예방이 가능하다. 유전병에 대한 대응은 발생한 다음에 치료하는 것보다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생활 습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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