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이렇다 할 목록조차 남기지 않고 청와대 문건을 몽땅 ‘대통령 기록관’으로 넘겼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청와대 곳곳에서 엄청난 양의 문건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일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 했지만 워낙 많은 양의 문건이 청와대 여기저기서 쏟아지다 보니 이제는 얘기가 많이 달라진 듯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당시 청와대의 공직기강이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통제력을 상실한 청와대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마침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의 주범들이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청와대에서 발견된 각종 자료들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한 증거로 뒷받침 할 것이다. 물론 ‘증거능력’이 있느냐는 문제는 각 문건들마다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당시의 청와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정황 증거로는 충분하다. 당시 청와대의 거부로 무산되긴 했지만 검찰이 몇 번이나 압수수색 하려 했던 바로 그 문건들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관련 문건을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법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자칫 소모적인 정쟁으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개할 수 있는 일부의 문건만 부분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정쟁으로 가는 것을 막고 법률적 문제까지 고려한 판단이다. 동시에 국민의 알권리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신중한 처리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당시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건의 일부를 보면 아직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는 내용은 없다. 그동안의 상황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들이고 이번 문건들은 그 내용들을 뒷받침하는 기록이나 문서가 대부분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상당 부분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관련 증거들이 이번에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이번 문건 가운데 정말 중요한 부분은 삼성 관련 청와대 문건이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됐다는 점이다. 당연히 경제수석실이나 기업 관련 부서에서 발견돼야 할 삼성 관련 문건들이 각종 정보와 사정기구를 총괄하는 민정수석실에 발견된 것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다. 자필 메모 작성자인 당시 청와대 이모 행정관은 법정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작성을 지시했으며, 메모의 내용과 기조도 결정했다고 증언했다. 예상했던 상황이긴 하지만 그 예상이 현실이 되다보니 더 놀랍고 충격적이다. 결국 우병우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사태의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사실상 ‘총괄’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문고리 3인방’과 급을 같이 하는 ‘우병우의 힘’을 확인해주는 증언이라 하겠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진실을 샅샅이 밝혀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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