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옛날부터 7~8월 여름이면 아이들과 아낙네들은 봉선화(봉숭아) 꽃잎을 따서 손톱을 곱게 물들였다. 
봉선화(鳳仙花)의 원산지는 인도·말레이시아 및 중국이다. 중국 명나라 왕상진이 지은 ‘군방보(群芳譜)’에 “줄기와 가지 사이에 꽃이 피어 머리와 날개, 꼬리와 발이 모두 우뚝하게 일어서서 봉황새의 형상을 닮아서 봉선화란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돼 있다. 그 밖에 봉선화로 손톱에 물을 들인다고 해서 염지갑화(染指甲花)라 하기도 하고 규중 여인들의 벗이라고 해서 규중화(閨中花)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봉선화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조선 초 강희안이 꽃의 품계를 1품부터 9품까지 나눈 ‘화목구품(花木九品)’에서 봉선화를 9품이라 했다. 조선후기 유박의 ‘화암수록(花庵隨錄)’에서는 봉선화를 8등에 매겼다. 

소세양의 ‘양곡집(陽谷集)’에 실려 있는 봉선(鳳仙)이란 한시에 봉선화물을 들이는 풍속을 처음 읊었다. 현존하는 문헌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예전에는 남자 아이들도 봉선화물을 들였다. 예쁘게 보이려는 뜻보다 병마를 쫓기 위한 것이었다. 오행설에 붉은색이 사귀(邪鬼)를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한다. 곧 귀신이 붉은색을 두려워하므로 손톱에 붉은 봉선화물을 들여 악귀를 쫓고 뱀을 쫓아낸다는 믿음에서 생긴 풍속이다.

실제 봉선화에서는 뱀이 싫어하는 냄새가 나서 집안의 울타리나 장독대 둘레에 봉선화를 심으면 뱀이 가까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봉선화를 금사화(禁蛇花)라고도 부른다. 평안도 지방에서는 밭 둘레에 봉선화를 심어 작물의 병충해를 방지했다.

그러면 이 풍속은 언제 시작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임하필기’에 따르면 송나라 때에 이미 이러한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송나라 때 고려로 건너왔거나 아니면 송나라에서 몽골로 이어져 몽골 때에 들어왔으리라 짐작된다. 고려 충선왕이 볼모로 몽고에 있을 때 손톱에 봉선화물 들인 아가씨를 만났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옛날에는 다섯 손가락을 모두 물들이지 않고 엄지와 검지를 뺀 나머지 세 손가락에 들였다고 한다. 지금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열 손가락을 다 들이는 수도 있고 엄지발가락에 들이기도 한다. 여름에 핀 꽃잎을 따서 말려 저장해 두었다가 1년 내내 물을 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부모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은 봉선화물을 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엄지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이면 아버지는 오래 살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신다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 사람은 유월에 봉숭아물을 들이지 않는다 ▲봉숭아물이 가을 서리 내릴 때까지 손톱에 남아 있으면 신랑감이 나타난다는 속설이 있다.

화장품이 적었던 옛날에는 봉선화물들이기가 병으로부터 건강도 지키고 아름다워지기 위한 소녀나 여인들의 소박한 미용법이었다.

갖가지 색깔의 편리한 매니큐어가 쓰이고 있는 요즈음에도 봉숭아물들이기가 행해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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