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죄로 기소된 조지 펠 호주 추기경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성명을 읽기 위해 마이크에 다가서고 있다. (출처: 뉴시스)

강간·성추행 3건 기소… “나는 성범죄 혐오, 결백 증명할 것” 혐의 부인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 펠(76) 추기경이 아동성범죄(강간·성추행) 혐의로 호주 법정에 선다. 펠 추기경은 교황청 재무원장으로 가톨릭교회 서열 3위인 최고위급인사지만, 호주 사법부는 어떠한 특별대우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호주,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 사역자들의 아동성범죄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25일(현지시간) 호주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따르면 호주 멜버른 치안법원은 “교황청 재무원장이자 가톨릭 서열 3위인 펠 추기경을 특별대우하지 않고 26일 법정에 세울 방침이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멜버른 치안법원이 추기경이라는 신분과는 관계없이 평상시대로 업무를 처리할 방침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펠 추기경은 마약, 음주 운전자 등 다른 범죄자들과 나란히 서서 법원에 들어가야 하며, 입장 시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또 재판 전까지 일반인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자신이 이날 심리 대상자임을 확인하고 기다려야 한다.

지난달 29일 시드니모닝헤럴드·AP 등 외신들은 호주 빅토리아주 경찰이 교황청 재정 책임자인 펠 추기경을 아동성범죄 혐의로 기소한 사실을 전했다. 시드니 대주교를 지낸 펠 추기경은 지난해 초 수사 대상에 올라, 강간 1건 등을 포함해 최소 3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셰인 패튼 빅토리아주 경찰청 차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조지 펠 추기경을 역사적인 성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고소인이 다수”라고 밝힌 뒤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성범죄 기소와 관련 펠 추기경은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첫 심리에 출석할 의무가 없음에도 반드시 참석해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펠 추기경은 같은 날 교황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얘기를 끝냈고, 가능한 한 빨리 호주로 돌아갈 것”이라며 “이번 일은 가치 없는 인신공격이다. 나는 성범죄를 혐오한다. 나는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왔고, 법적 절차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펠 추기경은 교황이 교황청 개혁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구성한 추기경 8인 위원회에 속한 인물이다. 교황청 내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혀왔다.

교황은 취임 후 “사제들의 성범죄는 끔찍한 신성 모독”이라고 비판하며 ‘성범죄 무관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

교황청도 이번 사건에 유감을 표명했다. 그렉 버크 교황청 대변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일에 유감을 표했다”며 “펠 추기경이 부재해도 교황청의 금융 개혁은 계속될 것이다. 호주의 사법정의를 존중한다”고 밝힌 바 있다.

▲ 지난 18일(현지시간) 독일 레겐스부르크 돔슈파첸 성가대 학교에서 발생한 아동성범죄를 조사한 베버 변호사가 관련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옥같았다”…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가톨릭 아동성범죄

교황청 최고위인사인 펠 추기경을 법정에 세운 데는 2013년 호주 연방정부가 신설한 특별조사위원회의 역할이 크다. 특조위는 호주 전역에서 벌어졌던 가톨릭교회 아동성범죄를 조사 중이다.

지난 2월 특조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호주 전역에서 조사한 결과 1980년부터 2015년 사이 ‘어린 시절 가톨릭 사제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신고한 이가 4444명에 달했다.

피해자의 95%는 남자아이였고, 학대를 받을 당시 평균 나이는 10~11세였다. 아동성추행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1880명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더 놀라운 것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중 수사(독신으로 수도하는 남자)가 32%로 가장 많았으며 신부는 30%, 평신도 29%로 조사돼 충격을 안겼다. 지금도 수사는 진행형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탓에 정확한 피해자 집계가 어려운 실정이다. 특조위는 출범 후 4년간 2400명의 진술을 받았으며 계속해서 청문회를 열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BBC, 가디언 등 외신들은 독일 남부 레겐스부르크의 돔슈파첸 성가대 학교 남학생 최소 547명이 지난 1945년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 사제들로부터 구타 등 신체적 학대와 부적절한 성폭력을 받을 사실을 보도했다.

특히 1964년부터 94년까지 성가대를 이끈 게오르그 라칭거 신부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형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가해자로는 사제, 교사, 행정직원 등 총 49명이 지목됐으며 이중 성범죄 가해자는 모두 9명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성가대 학교 시절이) 감옥이자 지옥이었다. 또 포로수용소 같았다”며 끔찍했던 과거의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지난해 1월에는 프랑스 가톨릭교회 베르나르 프레이나 신부가 경찰 조사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교회 소년 성가단원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자백해 파문이 일었다. 프랑스 가톨릭계는 독립위원회를 설치하고 사건을 조사한 후 프레이나를 비롯한 4명의 사제를 파면했다.

BBC는 사제들의 아동성범죄 사건이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은폐되고, 뒤늦게 드러나는 것에 대해 “사제들의 학대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가톨릭 특유의 ‘침묵의 문화’가 사건을 은폐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며 “범죄가 드러나도 교회는 비협조로 일관하기 일쑤”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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