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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잊혀져가는 달동네의 기억을 불러오다
강수경 기자  |  ksk@newscj.com
2017.07.24 15: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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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일보(뉴스천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더울 때 더 덥고
추울 때 더 춥던 곳

이제는 아련하게
추억해보는 그곳

‘달동네=불편·고생’에서
‘달동네=추억·기억’으로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달동네? 이 폭염에 달동네를 왜 가려하는 건데. 땀 흘리고 올라갈 생각하니까 상상만 해도 그저 덥다, 더워.”
 

   
▲ 수도국산 달동네의 옛모습을 그려놓은 벽, 낮과 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등을 설치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에 불이 켜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1~36도를 넘나들며 기승을 부리는 폭염이 전국을 강타한 가운데 더위를 쫓기 위해 피서지를 찾아 곳곳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많다. 으레 가는 산과 바다 외에도 도시민들이 쉽게 갈 수 있는 이색 피서지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상상만 해도 더울 것 같은 ‘달동네’이지만 오히려 시원하게 체험할 수 있는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도 있다.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이 엮은 책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도 소개돼 있다. 인천 동구 ‘수도국산 달동네’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지만, 그때 그 모습이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 그대로 재현돼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7월 중순 동인천역 인근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을 찾았다. 동인천역에서 박물관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동인천역 인근 골목 주변 상가와 건물들은 수십년을 거치며 색 바랜 자태 그대로 오가는 시민들을 맞고 있었다. 이 모습은 현대판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송현근린공원에는 여름 한철 운영하는 물놀이 터 ‘또랑’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송현근린공원 내에 자리한다. 공원 안에는 가족끼리 폭염을 식힐 수 있는 물놀이터 ‘또랑’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소리를 지르며 더위를 날리는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그 뒤로 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자주 보였다.

단번에 보이는 ‘수도국산’이란 명칭이 생소하다. 수도국산은 지명으로 과거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라고도 불렸다. 주변 일대가 매립돼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 이곳은 바닷가의 자그마한 언덕 소나무 숲일 뿐이었다.

송림산은 산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송현(松峴, 솔 고개)동, 송림(松林, 소나무 숲)동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달동네의 역사가 시작됐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 개항기 인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보가 큰 고민이었다.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한국정부는 1906년 탁지부(度支部)에 수도국(水道局)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했는데, ‘수도국산’이라는 명칭은 이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配水池)를 설치하면서 불리게 됐다. 이곳 송현근린공원에는 1908년 세워진 제수변실에서 아직도 인천 동구와 중구 일부에 급수를 하고 있다.
 

   
▲ 동인천역 인근에 위치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갑진년(甲辰年: 1904년) 왜병이 전환국(典圜局, 현 전동)자리 근처에 주둔하였는데, 이 때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철거시켜서 송현동 산 언덕에 새로 주거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 고일(高逸)의 인천석금(仁川昔今), 1955년 -

송현동 달동네의 형성 배경을 적은 기록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인천 동구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신설 마을로 찾아들었다. 비탈진 소나무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이어 한국전쟁(6.25)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라·충청지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집들이 들어차면서 18만 1500㎡(5만 5천여평)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000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하게 됐고, 그 결과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됐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당시 달동네의 주거 모습과 생활상을 실제모습에 근거해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었다. 박물관 곳곳에 세워진 마네킹도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달동네는 높은 산비탈에 자리해 주변 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었는데,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1층 전망대에서 지하에 조성된 달동네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주변에는 동인천역 주변에서 사람들이 찾았던 음악다방과 동네사진관, 중앙시장의 양장점 등이 재현됐다. 지하로 내려가면 본격적인 달동네 모습이 나온다. 달동네 주변에는 재래시장이 성행했는데 동네입구에서 구멍가게, 연탄가게, 복덕방, 이발소 등 자그마한 가게를 만날 수 있다. 박물관에서도 이 같은 루트로 체험해 볼 수 있게 꾸며졌다.

   
▲ 박물관에는 1960~1970년대 수도국산 달동네에서 실제 사용됐던 물품들이 진열돼 있었고, 벽에는 당시 부착됐던 내용의 벽보들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1960~70년대 당시 달동네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배고팠다. 퇴근길 연탄가게에서 새끼줄에 꿴 연탄 한 장을 샀고, 구멍가게에 들러 봉지쌀 한 줌을 사서 하루하루를 견뎌갔다. 이들의 동선을 따라 박물관의 달동네는 이어지고 있었다. 공공수도, 공동화장실, 성냥갑 만드는 부업 공간 등을 지나 이들이 생활하던 방이 나왔다.
 

   
▲ 수도국산 박물관 내부에 꾸며진 달동네 일부. ⓒ천지일보(뉴스천지)


달동네 대지는 일반적으로 좁고 길며 규모가 작다. 수도국산 달동네는 건축물을 지을 때 필요한 대지면적의 최소한도인 90㎡에 미달되는 토지가 81%를 차지했다. 문이 열린 단칸방에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 165㎝가 안 되는 사람이 허리를 펴고 눕기에도 방은 좁았다. 허리와 다리를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야 하는 정도였다. 화장실은 야외의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당시 불편을 겪었을 생활상을 짐작케 했다.

달동네의 생활상을 표현한 문학예술 작품들도 있다. 문학에서 당시 달동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는 현덕의 ‘남생이(1938)’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이 대표적이다. 도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소재로 큰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달동네(1980)’와 영화 ‘꼬방동네사람들(1982)’과 같이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달동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제작됐다. 문학과 예술작품에서 달동네는 그곳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통해 산업화된 사회의 부정적인 여러 증상을 해부하기도 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밝은 소시민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지금에 와 생각을 하니 없이 살았지만 그때 그 시절이 사람 사는 인정이 따뜻했던 것 같습니다. 적게 가진 자들이 많이 가진 자들보다 항상 서로 마음과 사물을 나누어 가질 줄 아는 따뜻한 온정이 품어져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지난날의 그때 그 시절 달동네 옛 이웃들 생각을 자주 머릿속에 그리게 되니 반백의 초로인생이 되어져서 그런지 자꾸만 지난날의 추억을 지울 수가 없네요(수도국산 달동네 주민 남기영).”
 

   
▲ 1960~1970년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재현해놓은 전시물.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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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2)
추미영
2017-08-01 09:33:46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옛날 감성 샘솟는다. 힘들었지만 인정
옛날 감성 샘솟는다. 힘들었지만 인정이 터졌던 때였지
유선주
2017-07-27 16:30:23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야~ 어릴적 생각이 난다 달동네에서
야~ 어릴적 생각이 난다 달동네에서 야경은 참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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