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8월부터 미국인의 북한 여행이 완전히 금지된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은 7월 21일 모든 미국 시민의 북한여행 전면 금지 조치를 승인했다고 헤더 노어트 대변인이 전했다. 국무부의 북한여행 금지 조치는 다음 주 관보에 게재되며 관보 게재 시점으로부터 한 달 후 발효될 예정이다. 다만 인도적 목적의 방문 등 특수한 목적의 북한 방문의 경우 시효가 제한된 특별여권을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번 결정에는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북한 여행 중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와 사망한 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혼수상태로 돌아온 오토 웜비어의 사망을 계기로 미국인에 대한 북한관광 알선을 중단했던 여행사들이 한 달도 안 돼 이를 재개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9일 보도했다. RFA는 이메일을 통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북한관광 알선 중단 방침을 밝힌 여행사들 10여 곳 대부분이 미국인에 대한 북한 관광상품 판매를 재개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전방위 압박 조치를 강화하는 조치의 일환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 중 하나인 관광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조야에서는 외국인의 북한 여행이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자금줄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북한으로의 관광을 완전히 금지함에 따라 북한과 아주 가까운 나라를 제외한 서방 세계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조처가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 미국 국무부는 그동안 북한 여행 경보를 정기적으로 발령해왔지만, 웜비어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인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왔다.

미 의회 역시 앞으로 5년간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해 심의하는 등 행정부를 상대로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압박해 왔다. 앞서 영국 BBC 방송은 북한 여행객을 모집하는 중국 여행사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와 ‘고려여행’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에 대한 여행금지 명령이 오는 27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는 트위터에서 “우리 여행사는 미국 당국이 이달 27일 북한 여행 금지명령을 발표한다는 것을 통보받았다”며 이 명령은 발표 당일부터 30일 이후에 발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는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지난달 의식불명 상태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온 뒤 1주일 만에 숨진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의 북한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다. 미국이 인도적 사유 등 특수 목적을 제외한 자국민 북한 방문을 금지하기로 한 것은 1차적으로 자국민 신변 보호, 2차적으로 북한으로의 외화 유입 방지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이번 조치가 가진 대북 ‘낙인효과’가 작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기술적으로 이번 조치는 북한 방문을 위한 미국 여권 사용을 ‘불법화’하는 것이다. 북한에 가면서 미국 여권을 사용할 경우 그 여권은 무효화하기 때문에 방북하려는 미국인은 정부의 확인을 받은 특수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내전, 정정불안 등을 이유로 일부 국가에 대해 미국 국무부가 발령하는 ‘여행자제’ 권고와는 차원이 다른 조치인 셈이다.

위반 시 어떤 제재가 가해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일단 관광이나 시찰, 민간 교류, 마라톤대회 같은 스포츠 행사 참가 등을 위한 미국 국적자의 방북은 미국 정부로부터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금지되는 셈이다. 미국 언론은 이번 조치가 냉전 시기 소련과 같은 적성국가, 1979∼1981년 미국인 인질사태가 발생했을 때의 이란 등에 대해 취한 ‘여행제한(restriction on travel)’과 유사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냉전 종식 후 거의 적용되지 않았던 조치가, 북한에 대해 취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 방문 시 억류될 수 있다며 위험성을 경고해왔지만, 이번 같은 사실상의 전면적 방북 금지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미국이 이번 조치를 취한 것은 무엇보다 제2의 ‘웜비어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자금줄 차단이다. 하지만 근년 들어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연간 10만여명 수준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들 중 대부분이 중국인이고 미국 등 서방 출신은 수천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많아야 수백명 단위인 미국인 관광객의 방북을 차단한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큰 대북 경제 제재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말로만 북한을 압박하던 미국이 이제 행동에 돌입했다는 것이 무서운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