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복날의 복(伏)의 어원은 알 수 없다. 최남선의 ‘조선상식’에 따르면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 풀이된다. 이 말은 ‘더위를 제압하고 굴복시켜 이긴다’는 뜻이다.

복(伏)날은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오행으로 볼 때 가을철 금(金)의 서늘한 기운이 대지로 내려오다가 아직 여름철 불(火)의 더운 기운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세 번 굴복 하는 것이 삼복이다. 이때가 여름철 중에서도 가장 더운 시기로 ‘삼복더위’라 한다.

삼복은 중국 진나라(기원전 676) 때부터 시작돼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이어져 오고 있다.

첫 번째 복날을 초복(初伏)이라 하고, 두 번째 복날을 중복(中伏), 세 번째 복날을 말복(末伏)이라 한다. 초복은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 

고려나 조선시대는 조정에서 삼복더위를 피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고려 때는 삼복에 관리들에게 3일의 휴가를 주었다. 문종 때는 공사를 금하게 했다. 조선시대는 삼복동안 공사, 임금의 경연, 세자의 서연을 미루었다. 고종 때는 학교의 방학시기를 ‘초복부터 말복까지 무더위 때’로 규정했다.

복날에는 더위를 이기고 몸을 보신(補身)하기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었다. 이를 복달임이라고 한다. 특히 개를 잡아서 개장국을 만들어 먹거나 닭을 잡아서 백숙을 만들어 먹었다. 또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기도 했다.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산간계곡에 들어가 탁족(濯足: 발을 씻음)을 즐겼고 해안지방은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며 더위를 이겨냈다. 

복날과 관계있는 여러 속신(俗信)들이 있다.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 하여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았다. 만약 초복에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과 말복에도 목욕을 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복날마다 목욕을 해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날에는 벼가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고 한다. 벼는 줄기마다 마디가 셋이다. 복날마다 하나씩 생기며 벼의 나이가 셋이 돼야 비로소 이삭이 핀다고 한다. 이날 떡과 전을 장만해 논에 가지고 가서 농사가 잘 되도록 비는데 이를 복제(伏祭)라 한다.

삼복 날씨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다. 삼복에 비가 오는 것을 삼복비라 불렸다. 전라도에서는 농사비라 하여 복날 비를 기다렸다고 부산에서도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강원도에서는 천둥이 치면 산과가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초복에 거미를 잡아 말려서 분말로 만들어 두며 감기에 걸렸을 때 그 가루를 먹었다. 

충청도 보은에서는 “복날 비가 오면 보은 처녀가 운다”는 속담이 있다. 복날 비가 오면 대추가 흉년이 들어 시집가기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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