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정부가 김영란법을 손볼 예정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3·5·10 기준(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손보거나 농축산물을 아예 대상에 빼 버리겠다는 것이다.  

16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의 하나로 “청탁금지법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에 입각한 인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잠깐 살펴보자.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청탁금지법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업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겠다.” “농축산물을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가액 기준을 상향하는 등 가능한 추석 전까지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 (지난 4일 취임식)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농·축·수산물이 제외되도록 김영란법 개정을 요구하겠다.” “법 개정이 힘들다면 가액(3·5·10만원 기준) 문제라도 시행령을 고쳐 농·축산물에 예외 적용을 하도록 하겠다.” (인사청문회) 

이낙연 총리: “김영란법을 도입하면서 기대했던 맑고 깨끗한 사회 가치는 포기할 수 없으나 그 과정서 과도하게 피해보는 분야들이 생겨선 안 된다.” “검토할 때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겠다.” (인사청문회)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3·5·10 기준은 10년 전 기준이라면서 5·10·10으로 상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시행령 개정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구미지역을 방문해서 김영란법이 영세상인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면서 “농·축·수산물은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행히 공약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후보는 3·5·10 기준을 10·10·5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경북지역을 필두로 농촌지역 의원들은 김영란법 때문에 농축산농가가 파탄난다고 하면서 법 개정안을 여럿 냈다. 지난해 6월 강석호 의원(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이 대표 발의한 법 개정안은 명절 때는 농축산물과 가공품 수수는 예외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7월 이완영 의원(새누리당, 경북 칠곡·성주·고령)이 대표 발의한 법 개정안은 농축수산물과 가공품을 제외하고 있다. 이 의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내수경기에 큰 영향을 주고 농축산 농가에 커다란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농축산물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미풍양속이지 청탁의 수단이 아니다”는 말까지 했다.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정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감영란법 개정을 공식화했다. 엉뚱하게도 최저임금 인상과 연계시켰다. 소상공인의 지원 대책의 하나로 김영란법을 손보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농축수산농가를 거론하더니 이제는 소상공인까지 끌어들여 김영란법을 손보려 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부정부패 방지법 손보는 데 쓰는 건 명백히 월권이고 직권남용이다. 

어떤 법도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 모든 계층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다. 부패방지법 같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법률은 일부 업종에 경제적인 영향과 타격을 줄 수 있다. 어떤 업종에 타격이 올까 걱정된다고 해서 부패를 방지하는 법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거나 저수지의 둑을 낮추어야 하는가? 이들의 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특별한 농업정책이 필요하다. 

정부 일각에서 거론하는 것처럼 농축수산물을 예외로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른 선물을 주는 걸 피하고 농축수산물로 몰아서 뇌물성 선물을 주고받게 된다. 사회를 제대로 부패시킬 수 있는 뇌물이 탄생하게 된다. 김영란법 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거다. 받는 이의 마음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우리의 공동체 대한민국에는 부정부패라는 적폐가 쌓이게 된다. 농어촌과 소상공인을 살린다는 구호 속에 부정부패 구조가 사회 구석구석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전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되고 농어민들과 소상공인도 피해자가 된다. 

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위헌 제청하는 흐름까지 나타나는 등 저항이 극심했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정착되어 가고 있다. 국회의원들과 정부 관료가 김영란법을 못 허물어서 조바심 내는 게 문제다. 국회와 정부는 나라 전체의 공의를 모으는 데 충실해야 한다. 시민들은 아마 외치고 싶을 것이다. “김영란법을 자구 하나 바꾸지 말라! 바꾸려는 자가 공범이다!” 

지난 정부와 여당에서 이 법을 공격하는 건 그래도 좀 이해가 됐다. 적폐에 찌든 세력의 발악이려니 했다.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번으로 삼고 부정부패 청산을 주요 국정지표로 삼는 문재인 정부에서 김영란법을 뿌리부터 흔드는 흐름이 나타나는 건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 앞으로 다시는 정부 안에서 김영란법을 손보겠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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