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2005년 10월 바티칸에서 레겐스부르크 돔슈파첸 소년 성가대의 콘서트에 참여한 모습. 베네딕토 전임 교황의 형인 게오르그 라칭거 신부가 이끌던 이 성가대 학교에서 지난 60여년간 547명이 사제와 교사들한테 신체적·성적 학대를 당한 것으로 조사돼 파문이 일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형이 이끈 가톨릭 성가대
1945~90년 547명 피해… 가해자 사제·교사 등 49명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아동성범죄로 홍역을 치르는 가톨릭교회가 이번에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형이 이끈 독일 성가대학교에서 과거 수십 년간 소년 540여명이 사제와 교사들에게 신체적 학대와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조사돼 충격에 휩싸였다.

18일(현지시간) 슈피겔, BBC,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남부 레겐스부르크의 돔슈파첸 성가대 학교 남학생 최소 547명이 지난 1945년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 사제들로부터 구타 등 신체적 학대와 부적절한 성폭력을 겪었다는 내용의 440페이지 분량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 성가대 학교는 975년 설립돼 1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1964년부터 94년까지 성가대를 이끈 게오르그 라칭거 신부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형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의 최고 책임자로 꼽혀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월 중간발표 당시 피해자는 231명이었으나, 추가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크게 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에 구타·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49명의 학교 관계자에는 사제와 교사, 행정직원 등이 포함돼 있다. 최종보고서를 발표한 피해자 측 변호사 울리히 베버는 “피해자는 유치원생부터 고교생까지 다양했다”며 “500명이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 또 67명은 성폭력까지 당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과거 재학생 전부를 조사하지 못했다는 점을 설명하며, 실제 피해자는 최대 7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 학교는 피해자들한테 1인당 5000(약 647만원)~2만유로(약 2591만원)까지 보상금을 지급했다.

피해자들은 조사 과정에서 베버 변호인에게 “(성가대 학교 시절이) 감옥이자 지옥이었다. 또 포로수용소 같았다”며 끔찍했던 과거의 고통을 토로했다. 이들은 “공포와 폭력, 무기력으로 점철된 생애 최악의 시기”라고 회고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선 라칭거 신부는 “가끔 소년들을 때린 적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멍이 들도록 구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에서 체벌을 금지한 1980년 이후엔 이를 중단했다”고 사과했다. 논란이 되는 성적 학대에 대해선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고 사실상 부인했다.

BBC는 “사제들의 학대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가톨릭 특유의 ‘침묵의 문화’가 사건을 은폐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며 “범죄가 드러나도 교회는 비협조로 일관하기 일쑤”라고 비판했다. 또한 “사제들이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가톨릭 시스템도 각종 범죄를 가능케하는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한 피해자는 이번 조사보고서와 관련 “모두 내가 30년간 말해왔던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탄식을 쏟아냈다.

가해자 49명이 모두 확인됐음에도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형사 책임을 묻기는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이 이번 보고서와 관련, 향후 어떤 조치를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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