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漢) 무제 때의 급암은 노자의 학설(도가철학)을 믿고 있었다. 그가 지방 관리 시절이었다. 관리와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있어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책임직 관리들에게는 각자가 직접 인재를 뽑도록 모든 것을 맡겼다. 그 자신은 병약하여 관청에 출근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지만 1년쯤 지나자 그의 업적은 크게 올라 백성들 사이에 칭송이 자자했다.

마침내 무제의 귀에까지 들어가 그는 주작도위(상훈국 장군)로 임명돼 각료의 반열에 끼게 됐다. 급암의 정치 이념은 ‘무위’를 취지로 삼고 자연의 원리를 중요시 하여 법률에 구애받지 않았다. 스스로를 높이 생각하여 솔직하게 말을 하고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었다. 자기와 비위가 맞으면 존중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하는 성품이었으므로 그의 행동은 별 칭찬받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감이 두텁고 생활 태도는 깨끗했으며 군주의 뜻을 거슬리면서 직언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부백이나 원앙, 가까운 사람으로는 관부와 정당시, 그리고 종성(궁내청 장관) 유기였으나 그들은 모두가 직간을 오래하여 벼슬을 길게 유지하지 못했던 인물들이었다.

그 즈음 승상 신분인 무안후 전분은 황태후의 동생임을 으스대며 대신들이나 지방장관급의 관리들이 인사를 해도 답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급암은 그런 전분에게 예도 갖추지 않고 선 채로 고개만 약간 숙였을 뿐이었다.

어느 날 무제가 회의에서 학자 등용의 뜻을 설명하자 급암은 곧장 의견을 말했다.

“폐하께서는 욕심이 많으시면서 체면에만 급급하십니다. 새삼스레 요나 순의 흉내를 내시어도 헛일이옵니다.”

그 말에 무제가 입을 다물어 버려 회의는 중지되고 말았다. 늘어서 있던 대신들은 모두 급암을 걱정했다. 어전에서 물러나 온 무제가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저 자는 도저히 손댈 수가 없다.”

그 뒤부터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급암은 당당히 말했다.

“모름지기 천자를 보필하는 자로서 신하의 위치에 있는 자라면 구태여 비위만 맞춰서 천자가 도를 그르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신하의 직책을 맡은 이상 내 몸을 사려서 제왕을 욕보일 수는 없다.”

무제는 대장군 위청이 찾아 왔을 때는 침상에 앉은 채 만났고 승상 공손홍이 왔을 때에도 관을 쓰지 않은 채 만나기도 했지만 급암이 왔을 때에는 약식으로 만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어느 날 무제가 휘장에서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급암이 배알을 청했다. 그때 무제는 공교롭게 관을 쓰지 않았으므로 휘장 속에 숨어서 측근을 대리로 내세우고 보고를 받았다.

그 무렵 장탕은 법률 개정의 공로로 정위가 돼 있었다. 급암은 황제가 신임하는 장탕을 곧잘 무제 앞에서 꾸짖었다.

“귀공은 대신으로서 위로는 선제의 위업을 이어받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사사로운 뜻을 바로잡고 백성을 부유케 하고 죄인을 없애어 감옥을 비게 하지도 못했다. 그 무엇 하나 손을 쓰지도 않으면서 심문만 심하게 하며 멋대로 법을 농락하고 있다. 더구나 고조께서 정하신 국시를 개정하다니 머지않아 극형을 당할 것이다.”

그런 일들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격론이 자주 벌어졌다. 장탕의 주장은 언제나 법규의 해석에 의해 펼쳐졌다. 그러나 급암은 정치 이념의 입장에서 대항했으나 자칫하면 몰리는 일이 많아 나중에는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자를 대신으로 삼으면 안 된다더니 과연 그렇다. 이제 머지않아 모두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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