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케이트 쇼트랜드의 호주영화 ‘베를린 신드롬’은 뜨거운 여름에 짜릿한 반전을 선물하는 작품이다. 116분의 러닝타임은 두 남녀배우의 계속되는 경계와 통제, 밀당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단계적 심리를 묘사하고 평상시 숨겨왔던 이면적인 모습들이 그려진다.

쇼트랜드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자유를 갈망하는 클레어(테레사 팔머)와 사회와 담을 쌓고 그녀를 완벽하게 통제하길 원하는 앤디(막스 리멜트) 사이의 치밀한 인물 탐구를 보여주며, 누군가는 억압하고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현대사회의 우리들의 모습을 재연했다. 베를린 신드롬은 인물이 어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별 의식 없이 빠져들었을 때 닥쳐올 수 있는 예기치 못한 불안감과 공포를 현실 그대로 표현하고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담아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묘미는 바로 인물들의 갈등과 극한적인 상황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어느 누구나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리얼리티를 담았다. 이상적 스릴러가 아닌 ‘나도 저렇게 당할 수 있겠구나’라는 심리적 압박감을 관객들에게 제공하며 점차 강인하고 지략이 있는 캐릭터를 구축했다.

특히 막스 리멜트가 연기한 앤디는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예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다. 앤디는 베를린으로 여행 온 여자 백인 여행객들을 타깃으로 유혹하며 자신의 집으로 끌고 와 감금하고 성적교감을 갖는다. 앤디의 불안은 느슨하거나 헐겁지 않다. 그는 직장에서든, 밖에서든 사회적 관계망을 거부한다. 그의 관계망은 언제든 채울 수 있지만, 그만큼 손쉽게 끊어낼 수 있는 고리로 지탱할 뿐이다.

앤디는 그렇기 때문에 베를린에 여행 온 낯선 여자 여행객을 먹잇감으로 사냥에 나선다. 이유는 간단하다. 낯선 여행객들은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며 자신의 백스토리, 불안감, 피폐된 형상을 파악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앤디는 바로 이러한 부분을 악용한다. 사랑도 하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것을 거부한다. 앤디는 영화 속에서 뚜렷한 원인을 모른 채 극도의 불안감과 쉽게 화를 내며 안절부절 못하는 범불안장애를 보여준다.

보통 소시오패스가 지닌 전형적인 이미지는 앤디를 통해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순한 양같이 행동하지만, 자신의 가장 가까운 인물에게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관객들은 생존에 시달리고 위험에 직면한 여주인공 클레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필자는 왜 그렇게까지 행동하고 사회적 괴물이 되어버린 앤디를 더 주목한다. 작품에 영감을 얻기 위해 베를린으로 온 호주의 사진작가 클레어. 그곳에 살고 있는 체육교사 앤디를 만나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다. 하지만 다음 날 앤디가 출근한 뒤 빈집에 홀로 남은 클레어는 베를린의 외딴 아파트에 감금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앤디는 그녀를 더욱 옥죄어 온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앤디는 자신과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한 환멸과 복수, 증오를 표현한다.

이웃이 전혀 살지 않는 소통이 멈춰진 앤디의 빈 아파트 동은 현재 앤디의 내면을 그대로 묘사해버린다. 외딴 아파트에서 평범한 교사의 얼굴과 다른 모습으로, 복수와 배타심을 근원적 정서로 약한 여자를 타깃으로 통제하고 유일한 그의 소통창구로 활용한다. 어찌 보면 두 인물은 평상시 우리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폭력성과 실존적 본능을 터치한 작품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클레어는 공포심 때문에 범죄자에게 호감을 점차 가지는,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고 연민을 느끼는 스톡홀름 신드롬을 나타내기도 한다.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두 인물은 영화 속 내내 마음속에 있는 어둠과 빛,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행동을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인간관계 사이에서 파생되는 감정의 진폭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클레어는 친밀함을 갈망하다가 자유를 원하고, 앤디는 사회와 단절된 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통제해버린다. 그는 연구대상인 클레어가 너무 가까이 다가서자, 그녀를 제거하길 원하고 새로운 대상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케이트 쇼트랜드 감독은 두 인물의 내면의 슬픈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했으며 카메라의 실험적 전개와 관객들이 계속 생각하게 하는 여지를 남겨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