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 체류권 위한 서명운동 모습이 전시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역사박물관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展
경제적 이유뿐 아니라 선진국 경험 위해 선택
한인 여성, 베를린서 적극적으로 삶 일궈 나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1. 파독간호사인 이수현씨는 1948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1967년 대학 정외과에 합격했으나 집안 형편으로 진학하지 못했다. 지인의 권유로 병원에서 일하다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 후 경북 영주모자보건 요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1970년 파독간호사로 선발돼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 병원으로 갔다. 1975년에는 베를린으로 이주해 아우구스트 빅토리아 병원에서 38년간 근무했다.

#2. 서의옥씨는 1953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났다. 19살 때 김천 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주 기독종합병원 간호사로 일했다. 1974년 파독간호사 모집에 지원해 베를린으로 간 후 현재까지 살고 있다. 이는 독일로 간 한국 여성 간호사의 삶이다.

당시 서울을 떠나 또 다른 분단국가였던 독일, 특히 장벽으로 단절됐던 도시베를린으로 많은 한국 여성이 떠났다. 그들은 왜 독일 이주를 택했고, 반세기 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서울역사박물관의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전시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봤다.

▲ 독일로 간 간호사들의 노정을 살펴보는 관람객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국 여성의 독일행

한국 여성들은 1950년대 이후 다양한 경로로 노동이주를 했다. 1968년 9월 해외 개발공사가 이주에 관한 일을 전담하는 기관이 되기 전에는 개인이나 종교단체 등의 중개를 통해 독일로 갔다.

독일 취업은 1950년대 간호학생 이주로부터 20여년이 넘는 동안 진행돼 간호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는 여성에게 선택의 기회였다. 이는 공개적인 공고뿐 아니라 친구, 가족, 학교 등에 의해 정보가 공유되고 추천됐다.

한국이 가난했던 까닭에 가족을 돕고자 하는 갈망이 이주를 선택한 기본적인이유가 됐지만, 이게 유일한 동기는 아니었다. 유학·취업으로 먼저 이주한 이들을 통해 들은 서구 선진 국가에서의 경험 등은 젊은 여성에게 용기를 줬다.

특히 여성으로서 겪고 있던 사회적 불평등에 일찍 눈을 뜬 이들에게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날 기회로 여겨졌다. 선진국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길 원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미래에 투자할 기회였다.

당시 한국 사회 안의 부정 부패에 대한 절망감, 해방을 위한 시도 등도 이주의 중요한 동기가 됐다. 외국으로 갈 기회가 매우 적었던 그 시절, 독일 취업은 국경을 넘을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 독일로 간 간호사들이 사용한 장비들 ⓒ천지일보(뉴스천지)

◆베를린에서의 새로운 삶

서베를린은 분단국가 출신 이주노동자인 한인 간호여성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하는 도시였다. 사회주의 동독 한가운데 있는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에 간다는 사실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 속에 있던 당시의 간호 여성과 가족에게 두려움을 갖게 했다.

특히 1967년 ‘동백림 사건(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을 겪으면서 이런 경향은 더 강해졌다.

그러나 당시 베를린은 서독의 한 도시로 독일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주거가 권장됐고, 일자리도 풍부했다. 독일 젊은 세대가 과거 세대의 권위 등에 항의하던 68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해 이주한 여성은 반공이데올로기는 물론 여성 해방 의식, 소수자 문제 등에 대한 인식 전환을 경험했다.1970년대 후반 외국인 고용 중단을 선언한 서독의 기관들이 간호여성을 해고하고 귀국을 종용했다.

이에 항의해 체류권 획득을 위한 한인 여성의 투쟁이 이어졌고, 서베를린은 그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를 계기로 결성된 ‘재독 한국인 여성’의 주요 활동지역인 베를린의 여성은 정치·사회적 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문화 활동을 전개했다.

다양한 정치·사회·문화·역사적 경험이 가능했던 베를린에서 한인 여성은자신의 시각을 전환하고 경계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삶을 일궈 나갔다.

 

◆한국으로 귀환

서독 의료기관에 취업했던 한국 여성 중 많은 이가 처음 3년 계약이 끝난 후 혹은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대 귀국했다. 이들은 서독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일하며 모은 월급으로 부모와 형제를 부양하는 한편 결혼해 가족을 꾸렸다.

경제적인 문제로 이루지 못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사회 전문직으로 진출해 활동하기도 했다. 주부로 지내다가 병원에 재취업해 정년퇴임을 하거나 현재까지 일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독일에서 결혼한 남편과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10여년 지난 후에야 가족과 귀국한 이도 있고, 한국에 온 후 결혼 생활을 하다 부양을 위해 다시 독일로 취업한 이도 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여년을 서독 사회의 이주노동자로 일했던 여성들. 이들은 독일이라는 낯선 곳에서 경계를 넘어 소통하고자 했다.

이들의 경험을 통해 오늘날도 국내에 있는 다양한 국적, 종교, 문화를 가진 이들과의 소통, 통합의 길을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한편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전시는 9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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