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시기상으로 초복을 지나 중복 사이에 이르게 되면 장마기간 중이라도 후덥지근하다. 요즘은 날씨 변덕마저 심해 중부지방에는 호우경보가 발령돼 곳곳에 침수 피해를 입는가 하면 또 동해안 지역에서는 섭씨 33도 이상의 기온이 며칠간 계속돼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오락가락 날씨 속에서도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으니 그저께는 천년고도 경주의 기온이 섭씨 39.7도로 7월 들어 최고기록을 나타냈다. 이 기온은 ‘무더운 고장’으로 소문 나있는 대구가 1942년 7월 28일 세운 최고기온(39.7℃)과 같았고, 75년 만에 닥친 사상 두 번째 7월 무더위였다.

더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았던 7월의 기온 자료를 찾아보니 1938년 7월 21일 경북 추풍령(秋風嶺)의 39.8℃이다. 또 역대 최고기온은 8월 달에 보인 40℃다. 1942년 8월 1일 대구에서 최고 기온이 나왔으니 흔히 사람들이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는 대구를 두고 가장 무더운 도시, 폭염의 도시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저께 찾아온 경주지방의 고온은 7월 기온으로서는 역대 두 번째였으니 찜통더위로 경주시민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또 어제는 동해안 영덕지방이 37.9℃로 당일 최고기온을 보였다. 동해안의 두 지역, 경주와 영덕이 내리 이틀간 최고기온을 보였던바, 시원할 것 같은 바닷가 지역에 기상이변이 나타난 것이다.

경주 무더위에 관한 글을 쓰다보니 그곳에 사는 이종사촌 누님이 생각나 문안전화를 올렸다. 더운데 어떻게 지내시느냐 물으니 대뜸 “야야, 말도 마라. 집에서 에어컨 틀고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턱턱 막히더라” 말했다. 지독한 더위라는 것이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삼복더위에 야외활동을 하랴마는 폭염특보 때는 외출을 삼가하시라는 말과 함께 장마 끝나고 본격 더위가 닥치는 8월까지 한 달 정도는 건강에 더 유념하시라는 말로 안부를 전했다. 노인들이 집안에서 에어컨, 선풍기 바람으로 무더위를 견뎌야 하는 그 자체도 솔직히 고생이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폭염이 계속되면 취약 계층인 노인과 아이들은 되도록이면 야외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폭염에 노출돼 발생한 온열질환자가 의외로 많은데, 최근 6년간 통계에 따르면 평균 1059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2125명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인명피해가 증가 추세에 있다.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1994년에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3384명이라 하니 한낮의 뜨거운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자연현상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피서 대응을 잘 해야 한다.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여름나기를 떠올리려니 예전일이 생각난다. 필자의 청년시절, 폭염 도시 대구에 살던 그때는 한여름 주말이 되면 경주누님 댁으로 피서 행차를 했다. 대지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오후에 무더위를 쫓는 방도는 조카와 함께 황성공원으로 가서 나무그늘 아래서의 피서다. 그곳은 넓은데다가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라 한여름에도 시원했다. 공원길을 거닐기도 하고, 숲 사이 저만치 흘러가는 남천 물위에 비친 이글거리는 햇빛과 실개천이 굽이치는 멋진 풍경들을 맛보는 황성공원에서의 여름나기는 나에게 나름대로 즐거움을 선사했다.

아름드리나무 밑에 자리를 펴고서 신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상념하면서 쉬다보면 시원스런 바람결에 어느덧 낮잠에 취하기도 했다. 얼마간 자고 일어나면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그때 느낀 기분은 상쾌하기가 그지없었다. 돌이켜보면 까마득한 옛적 이야기다. 한여름 나무그늘에서 매미소리를 자장가삼아 낮잠이라도 잘 수 있었던 그 때는 지금처럼 물질문명이 풍부하지 못했고 여름단골 에어컨도 없었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 추억이 된 황성공원에서의 시원한 여름나기도 기상환경이 변해버린 이제는 한낱 꿈에 불과하다.

삼복더위가 닥칠수록 건강한 여름나기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주변에서는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예전과 달리 산업발전과 자동차 증가에 따른 대기 오염 등 자연환경의 급변으로 날이 갈수록 이상고온을 보이고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되는 일수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특히 한낮엔 사람 체온을 상회하는 기온이 연속되다보면 이로 인해 인명피해도 예상치 않게 발생되는 터라 사람들은 기상청의 생명기상 정보에 귀기울이며 시원한 여름 보내기에 관심을 갖는 건 인지상정이다.

들리지 않던 매미소리가 무더위가 찾아들면서 우렁찬데, 드세진 울음소리는 마치 폭염을 알리는 경보처럼 들린다. 무덥다고 해서 전기료 부담도 만만치 않고 냉기로 인해 건강 문제가 따르는 에어컨 바람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주변에서는 열대야 숙면법을 익히고, 배탈과 식중독 예방에 더욱 힘쓰는 등 ‘건강한 여름나기 프로젝트’에 열중이다. 어떻게 하면 더위 고생하지 않고 올여름을 잘 보낼 것인가 이게 관심사다. 아무렴 건강하고 시원한 여름나기가 큰 숙제로 다가선 무더운 계절에 나의 지인들에게 안부 묻노니 당신의 ‘건강한 여름나기’는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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