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장미

정 숙

 

열사흘 달밤 입술 새빨갛게 바르고
오월 담장 넘어가는 저 처녀들을 어쩌나!

들키면 머리카락 싹둑 잘린 채
집안에 갇혀 버리고 말 텐데

계남동 그 언니, 문고리 잡고
가시 일으키며 울다가 벼락을 맞았다는데

저 피어나는 장미꽃 새빨간 송이들 따라
봄날은 속절없이 가고 있는데

 

[시평]

‘오월의 장미’라고 했던가. 오월이면 온갖 꽃들이 피건만, 유독 장미의 붉은 꽃이 그 백미를 이루고 있음은, 장미의 그 빛이 강렬해서인지도 모른다. 장미 넝쿨이 담장너머로 넘어와 그 빨간 꽃들을 피우고 있는 모양을 보면, 마치 입술 새빨갛게 바르고는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 집 담장을 넘겨다보는 젊은 처자들과 같이 보이기도 한다. 

요즘이야 어디 그렇겠느냐마는, 예전에는 다 큰 처녀들이 밖으로 나돌면, 특히 입술이라도 빨갛게 바르고 나돌면, 집안의 어른들이 못 나가게 단속을 하고, 심하게는 머리채를 싹둑 잘라 집안에 가두듯이 들여앉혀놓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시에 나오는 ‘계남동’이 어딘지는 알 수 없어도, 화자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느 장소, 특히 밖으로 나돌지 못하게 집안의 어른들이 머리채를 잘라 들여앉힌 어느 과년한 처녀가 슬프게 살던 그 지역의 이름쯤 되는 모양이다. 담장 너머로 붉은 장미꽃들이 그 얼굴을 드러내는 오월이 되면, 어린 시절 살던 마을, 계남동 그 언니, 문고리 잡고, 가시 일으키며 울다가 벼락을 맞았다는 그 언니. 그러나 그 언니는 다만 계남동의 그 언니만은 아니리라. 

열사흘 달 밝은 밤이면, 그 휘영청 밝은 달빛 따라 어딘가로 정처 없이 가고픈, 그래서 입술 새빨갛게 바르고 오월, 그 담장 넘어가고 싶어 하던 계남동 그 언니. 실은 우리 모두 그 언니 마냥, 빨갛게 입술 바르고 담장 너머로 얼굴 내밀던, 그래서 피어나는 저 줄장미 새빨간 송이들 따라 속절없이 떠가고 싶었던, 그런 처자들 아니었던가. 

윤석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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