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한민족에게 ‘미역국’은 ‘태어난 날’을 상징한다. 아이 낳은 산모가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이고 해마다 생일에는 반드시 먹는 음식 또한 미역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산후 조리로 약 3주간 삼시세끼 미역국을 먹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습이다. 

일상생활에서 ‘미역국 먹었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생일’이고, 또 한 가지는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의미다. 미끌미끌한 미역은 ‘미끄러진다’ ‘떨어진다’는 연상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시험 보는 날에는 미역국을 피한다.

그러면 우리 선조들은 언제부터 미역국을 먹었을까? 산모가 미역국을 먹는 풍습은 고문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국 당나라의 백과사전인 ‘초학기’에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먹은 뒤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려(고구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고 기록돼있다. 

동해바다는 고래가 서식하고 있고, 신석기 시대(BC 6000년~BC 1000년) 선조들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놓은 237개 그림 가운데 고래 그림이 62점으로 제일 많다. 따라서 한반도는 환경적으로 고래의 생태를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미역은) 동해의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데 해초와 비슷한 것이 부드럽고 길다. 아이를 잘 낳게 하고 부인병 치료에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역은 고려의 특산물이라고 밝혔다. 

조선 최고 의학서인 허준의 ‘동의보감’은 미역의 약성(藥性)에 대해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치료하고 기가 몰려 뭉쳐 있는 것을 다스리며,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고 했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미역국은 임산부에게 신선의 약만큼이나 좋은 음식”이라고 평가했다. 또 조선시대 여성들의 풍습을 기록한 ‘조선여속고’에는 “산모방의 남서쪽에 쌀밥과 미역국을 세 그릇씩 장만해 삼신(三神)상을 차려 바쳤는데 여기에 놓았던 밥과 국을 산모가 모두 먹었다”고 기록했다.
산모가 먹는 미역은 ‘해산미역’이라고 해서 넓고 길게 붙은 것을 고르며 값을 깎지 않는다. 산모가 먹을 미역을 싸 줄 때는 꺾지 않고 새끼줄로 묶어 주는 풍속도 있다. 미역을 꺾어서 주면 그 미역을 먹을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난산을 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미역은 칼슘과 요오드 등 무기질이 풍부해 산후에 늘어난 자궁의 수축을 돕고 조혈제 역할을 한다. 아울러 산모의 젖을 잘 돌게 한다.

미역국은 산욕열(産褥熱)을 예방해준다. 애기를 낳고 나서 생긴 상처 부위에 세균이 침범하면 염증이 생기면서 열이 나는 것을 산욕열이라 한다. 항생제가 없던 시대에는 산욕열을 치료할 뚜렷한 방법이 없었으나 예방책으로 성질이 찬 미역국을 끓여 산모에게 먹였다는 분석이다.

이런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미역은 산모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미용식으로 손꼽히게 됐다. 여성들이 많이 찾는 찜질방의 인기 메뉴이기도 하다. 미국의 유명 병원에서도 산후 건강식으로 미역국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그런데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보건부는 최근 “미역국에는 요오드가 과도하게 포함돼 있어 산모와 신생아에게 해롭다”는 권고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가정의 여성이 아이를 낳은 후에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시어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억지로 먹는 것’이라고 한다.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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