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일제의 용산군용지 수용 관련 문건을 13일 111년 만에 처음 공개했다. (제공: 용산구청)

군기지 조성 전 일본군이 작성

[천지일보=강병용 기자] 용산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본격화된 가운데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일제의 용산군용지 수용 관련 문건을 111년 만에 처음 공개하는 등 용산기지의 원형과 역사성을 밝히는 작업에 팔을 걷고 나섰다.

13일 용산구가 공개한 문건은 61쪽 분량으로 지난 1906년 일본군이 용산기지를 조성하기에 앞서 작성된 것이다. 일제가 용산 군용지를 수용하면서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등 구체적인 숫자가 담겨 있다.

문건은 군용지 수용을 둘러싸고 당시 한국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와 이토 히로부미의 ‘통감부’ 일본 육군성 사이에서 오간 여러 대화를 담아내 이목을 끈다.

명세도(상세 지도)에는 대촌, 단내촌, 정자동, 신촌 등 옛 둔지미 한인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마을 규모 등이 상세히 그려져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둔지미 마을은 조선 후기 둔지방(屯芝坊) 일부였다. 당시 용산은 원효로 일대 용산방(龍山坊)과 후암·이태원·서빙고동 일대 둔지방 등으로 구분돼 있었다.

명세도 한편에 기록된 ‘구역별 철거기한’에 따르면 1906년 6월부터 1907년 4월까지 둔지미 마을에 대한 강제철거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둔지미 신촌(新村)의 경우 비교적 규모가 큰 마을이었으나, 1908년경 모두 강제이주를 당했다. 이후 해당 지역에 일본군사령관 관저가 들어섰고 오늘날 인근에는 미8군 드래곤힐 호텔(DHL)이 자리해 있다.

명세도에는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도 그려져 있다. 우리 선조들이 수백 년 동안 이용했던 역사와 흔적이 오롯이 배어 있는 길이다. 도성을 빠져나온 조선통신사도 이 길을 통과해 일본으로 향했다.

용산구는 이번 문건 발굴이 학계는 물론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옛 둔지미 한인마을에 대한 기록을 통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용산기지 조성 이전, 지역의 오랜 역사를 부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국가 주도로 용산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부족하다”며 “용산 원주민들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는 역사를 감안, 공원 조성 과정에서 구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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