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현재 한반도의 정세는 북한의 ICBM 발사로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싱크탱크들은 이 와중에서도 평화통일을 주창하고 있다. 서울은 평양을, 평양은 워싱턴을 바라보는 기형적 열망과 관망은 언제 변곡점을 찍어줄지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7월 6일 ‘베를린 구상’을 통해 한반도의 냉전 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정책을 이끌기 위한 우리 정부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라고 강조하면서, 정전협정 64주년인 오는 7월 27일을 기해 군사분계선(MDL)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북한에 제안했다. 이 제안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으로, 군 안팎에선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이 문 대통령의 제안을 실현시킬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 중인 것이 사실”이라며 “북한에 보여줄 제스처로 가장 쉬운 카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북 관계의 온냉(溫冷)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 왔다. 오래전인 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성명 발표 뒤에도 한 차례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고, 이때에도 북한이 먼저 도발적으로 재개하면서 군사적 대결구도를 원상복귀 시켰다. 지난 2004년 남북 합의로 군사분계선 인근 대북 방송용 확성기를 군사분계선에서 모두 철거했지만, 2010년 3월 북한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우리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재설치했다.

그리고 5년 뒤인 2015년,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에 목함지뢰를 매설해 우리 군인들을 공격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확성기 방송이 11년 만에 재개됐으며, 이동식 확성기도 새로 투입하기로 결정됐다. 북한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우리 측 확성기 타격 훈련을 강화했고, 전통문을 보내 48시간 내 확성기 철거를 요구하는 동시에 남쪽으로 2차례에 걸쳐 포격 도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황병서와 김양건 통전부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면서 ‘8.25남북 합의’로 중단됐다가 지난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면 재개됐다. 군은 현재 군사분계선 인근 10여 곳에서 고정·이동식 확성기 10여대를 투입해, 하루 최대 6시간씩 대북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대북 확성기에 대한 “타격”을 공언할 정도로,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역시 지난해 5월 제7차 당 대회 결정서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심리전 방송과 삐라 살포를 비롯해 상대방을 자극하고 비방 중상하는 일체 적대행위들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정권이 ‘대북 확성기 방송’에 민감한 이유는 그만큼 확성기를 통한 대북 심리전 효과가 커, 정권의 안전성에 실제적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에 증언에 따르면, 북한 정권의 통제에 따라 ‘조선중앙TV’만 시청하는 북한 군인과 주민들에게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한과 접하며, 탈북을 꿈꾸게 되는 유일한 통로이다. 실제로 지난달 군사분계선을 넘어 경기도 연천군의 우리 군 GP를 통해 귀순한 20대 초반 북한군 병사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탈북자들이 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동경하게 돼 귀순할 마음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군사적 효과가 입증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단되는 것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우려도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북한이 운용 중인 대남 확성기는 우리에게 피해가 거의 없지만, 대북 확성기는 북한 정권이 유독 아파하는 부분”이라며 “양쪽이 동시에 방송을 중단하면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것은 우리”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 대북 방송을 중단하면, 다시 시작하는 것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워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우리 측이 대북 확성기 중단처럼 북에 전향적인 제스처를 먼저 보여 주어야 굳게 닫힌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에 대해 엇갈리는 기대와 우려 속에 확실한 건, 지금까지처럼 남북관계의 상황에 따라 중단과 재개가 반복돼선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와 통일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문제는 상대방인 북한의 성의와 태도다. 우리가 선의를 베풀면 반드시 북한은 이에 답례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북한은 보는 바와 같이 군사적 도발과 비방으로 대답해 왔다. 오히려 ICBM을 쏘아올린 이 순간은 대북방송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지 않을까. 아무튼 통일의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이번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반드시 성과로 피드백돼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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