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결혼이주자는 2007년 8만 7964명에서 1년 사이 1만 4749명이 증가한 10만 2713명에 이른다. 이처럼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결혼이주자로 인해 다문화 가정도 매해 늘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있어야 할까. 본지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전국 다문화 가정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아들 경민 군이 후두염으로 입원해 뷔티깜 씨와 그 가족들을 충남대학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이영호 씨, 뷔티깜 씨, 아들 경민 군, 시어머니 김남수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뉴스천지=강수경 기자] 대전 뿌리공원에서 지난 4월 17~18일 열린 효 문화 뿌리 축제에서는 색다른 이벤트가 펼쳐졌다. 결혼 때문에 베트남에서 이주해온 뷔티깜(21, 베트남) 씨가 결혼한 지 2년 만에 우리나라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논산시 성동면 정지리에서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이영호(44) 씨가 바로 뷔티깜 씨가 사랑하는 남편이다.

이들 부부와 가족을 충남대학병원 소아과 병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들 경민(10개월)이 후두염에 걸려 입원했기 때문이었다.

이영호 씨는 23세 때 화상으로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잃어 장애를 가진 후 결혼 생각을 접었다. 나이 40줄을 넘기며 주위 장애인 친구들이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은 그는 베트남으로 향했다.

코리아 드림을 꿈꾸었던 뷔티깜 씨에게는 이영호 씨는 고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자 연인이었다. 이영호 씨의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어머니 김남수 씨는 “처음부터 우리는 경제적인 어떠한 조건도 알리지 않았고 단지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과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며 “우리 며느리는 다른 조건을 보고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뷔티깜 씨는 “농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베트남에 있을 때 농사가 너무 힘들었고 한국의 농사는 더 쉽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에게 다른 욕심은 없었다.

뷔티깜 씨에게 한국생활은 새 문화 적응이라는 문제와 향수병과의 전쟁이 더해졌다. 그는 “이 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음식과 한글을 많이 알려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전했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시부모는 매일 화상으로 통화하며 문화를 알려주는 교사역할을 했다.

김 씨는 “몇몇 시어머니들이 이주민여성들 돈을 주고 사왔다고 홀대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들이 먼저 똑같은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사랑해줘야 잘 적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들 경민과 남편과 함께 배 농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뷔티깜 씨에게 한국은 행복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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