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달 19일 오후 2시경 노점상인 박단순씨가 쓰러졌다. 강북구청의 지시를 받은 용역 세 명이 거리에서 갈치를 파는 박씨에게 물건을 빨리 치우라고 다그쳤다. 물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둘러 치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사람이 쓰러졌음에도 용역들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뒤늦게 허둥대면서 팔을 주무르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주변 사람들의 재촉에 못 이겨 119를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 생명을 구할 골든타임을 놓쳐 버렸다. 그럼에도 구청 측은 변명하기에 여념이 없다. 

60, 70년대 불어 닥친 이촌향도의 열풍 속에 서울로 올라온 농민들은 대부분 도시빈민의 삶을 살게 된다. 그동안 나라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서민들의 삶과 도시빈민의 생활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고른 정치, 바른 정치, 나누는 정치를 못했기 때문이다. 나라를 잘못 운영한 탓에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가 고착화됐다. 강북구에는 인근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못사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강북구에 노점상인이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의 구청장은 조선시대로 말하면 목민관이다. 목민관의 사명은 자신이 관할하는 곳의 백성을 잘 돌보는 데 있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고 사회적 약자의 삶을 보살피는 게 임무다. 특히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보듬어야 할 노점상인의 삶을 돕기는커녕 노점상인의 삶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는 지자체장들이 많다. 서울 동작구청장이 대표적이고 강북구청장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동안 위정자들이 정치를 잘못한 탓에 노점상이 일정하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알맞은 일자리가 있다면 왜 이들이 매연 마시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얼마 벌지도 못하는 노점을 하겠는가? 번듯한 직업을 구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기관지 버리고 몸 망가뜨리고 추위에 떨고 더위에 시달리며 생계 불안을 선택하고 쫓기는 삶을 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노점상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놓고 공방이 오가고 있다. 유족들과 노점상인 측은 강북구의 강압적인 단속이 원인이라고 말하는 데 비해 강북구 측은 정상적인 단속 과정이었고 욕설도 폭력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공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점이 아니면 생계를 꾸려갈 방법이 없는 사람들을 단속 대상으로 삼고 벼랑 끝으로 몰았다는 거다.

서울지역 구청장 가운데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사람이 많다. 가장 힘든 삶을 이어가는 노점상인들의 삶을 잘 돌보고 상생하는 구청장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노점상을 단속하기 위해 혈세를 퍼다 붓고 있다. 노점상인들의 삶을 파괴하기 위해 용역을 동원한다. 저급하고 비인간적인 정치다. 강북구 노점상인의 죽음은 지자체가 노점상인의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과정에서 생긴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죽음은 공권력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다. 서민을 앞세우는 더불어민주당이다. 같은 당 출신 구청장이 사람을 사지로 몬 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논평조차 안 나왔다.    

박겸수 구청장은 자기의 관내에서 자신이 정치를 잘못해서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 의식도 없는 것 같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병원에 단 한 번 와서 아들한테 어머니 나이만 묻고 가버렸다는데 믿기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마당에 법적 책임 공방을 벌이는 건 우습다. 책임을 못 질 위인이라면 사표 쓰는 게 낫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박겸수 구청장은 정중히 사죄하라. 다시는 똑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협조할 것, 합당한 배상을 할 것을 약속해야 마땅하다. 결자해지가 필요하다. 

강북구청 쪽에서 나온 말 가운데 주목해야 할 말이 하나 있다. 민원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다산 콜센터로 민원이 들어오면 일정한 시간 안에 처리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속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지자체마다 노점상 관련 민원을 다르게 처리하는 것으로 보아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변명인 측면이 강하지만 서울시가 노점상에 대한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 일반 민원과 똑같이 처리하는 지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 서울시는 사람의 생존권 문제는 민원 사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 시절 문재인 후보가 사람들 가슴을 울린 건 “사람이 우선이다!”는 선거구호였다. 대선 때 뜨거운 화두가 된 적폐청산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노점상의 죽음을 엄중히 보아야 한다. 인권위를 격상시키라고 하고 노동인권을 말하면 무엇 하는가. 한쪽에선 공권력의 비인간적인 집행으로 사람이 죽어 가는데. 

“사람이 우선이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는 살인적인 노점단속을 멈추어야 하고 노점상인의 생존권과 인간존엄성, 경제 생활권을 인정하고 상생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집권하는 동안은 노점상인들의 생존권이 짓밟히는 건 용납 못한다”는 단호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사람이 우선이다”는 슬로건은 비로소 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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