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 회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주한 미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 대리를 만났을 때, 하스 미국 외교협회 회장을 만났을 때 통역 없이 직접 대화를 주고받았다. 기자들은 우리 장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세워 취재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우리나라에서 일을 할 때 한국말을 쓰는 게 기본이겠다. 우리도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외교관이나 기업인은 그 나라말을 써야 한다. 또, 나라 대 나라로서 협의할 때에는 각자 자기 나라말로 하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에는 통역을 두어 해결하는 게 원칙이라 본다. 민간단체끼리 회의할 때에도 이런 원칙으로 처리한다. 대한변리사회와 중국, 우리와 일본변리사회가 회의할 때 통역을 둔다. 세 나라 단체가 같이 회의할 때에는 통역이 복잡하여 이때에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영어로 통역하기도 한다.

외교관이나 기업인으로 우리나라에서 일한다면 직접 우리말을 하거나, 안되면 통역을 데리고 가는 게 맞겠다. 외교부는 나라 사이에 일이 많으니 외국인 외교관을 위해 통역을 준비하여 외국인을 배려하면 되겠다. 위 주한 사람들을 맞을 때에 외교부에는 통역할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기자들도 우리말로 내용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을 것이다. 여긴 한국이니까.

국가 간 업무에서 낱말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외교부는 다른 나라와 협상을 맡아 처리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도 각 분야별 협상 책임자는 외교부 직원이었다고 기억한다. 외교부 직원은 협상 절차나 형식은 잘 알지 모르나 협상 의제에 깊은 전문 지식을 갖추진 못했다. 각 분야별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협상을 끌어가야 한다. 그런데 외교부 직원이 상대국 언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상대국 말로 진행해 버리면 협상이 어떻게 굴러가겠는가?

외교관이 제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해도 본토인과 비교하면 같거나 못하다. 영어 본토박이와 영어로 협상한다면 잘해야 본전이다. 그런 마당에 영어로 협상하겠다고 나서면 어리석다. 실제 민감한 사안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강 장관은 잘해야 본전인 방식으로 공무를 처리했다. 그래서 구설에 올랐다. 

통역을 쓸 때, 통역이 주는 불편함도 있지만, 실수할 때 바로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통역을 쓴다면 못해도 본전이다.

협상에서 우리말을 쓸 수 있으면 언어에서 자유롭다. 언어에서 자유로우면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협상에서 어떤 말을 쓸 것이냐는 중요한 무기다. 중요한 무기를 스스로 버린다면 바보짓이다.

국격도 생각해 보자. 주권국인 우리나라에서 논의하는데, 우리말로 하는 게 기본이다. 외국인을 배려해야 하지만 정도를 넘으면 국격을 떨어뜨린다. 우리말을 써야 하고 우리말을 쓸 수 있는데, 영어로 할 이유가 없다.

성 킴 전 주한 미국 대사는 한인 2세로 한국말도 유창하게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반드시 영어로 얘기했다 한다. 미국 정부에서 일하는 공직자의 기본 원칙이란다. 한국에 온 미국대사가, 한국에서, 한국말을 잘하면서, 영어로 얘기하는 것, 나란히 놓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나온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 중요하다. 이 이전에 우리다움 대한민국다움을 갖춰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 꼭 새겨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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