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김수현의 리얼이 관객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거야?” “왜 이리 영화에 중국 냄새가 많이 나?” 등 영화를 보고 나온 20대 초반 커플의 반응이다.

김수현의 리얼은 ‘졸작이다’ 혹은 ‘걸작이다’를 놓고 양분화 되어 있는 모양새다. 대체적으로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졸작을 택했다.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공감이 가고 울고 웃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면,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고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밖에 뭔가를 크게 오버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연출자의 욕망이 커졌다면, 관객들은 확대해석을 할 것이고 정답과 오답을 떠나 재미를 잃게 될 것이다.

감독은 일반적 러브스토리나 현실적 스릴러를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촬영기법도 왜 그리 이명세 감독 작품들의 미장센이 떠오르는지, 반갑기도 하면서 요즘 영화들의 색감 톤과는 확연히 달라 낯설기까지 했다. 리얼은 관객들에게 영화 곡성같이 계속적인 질문을 던지지만, 등장인물의 모호성과 뒤죽박죽 플롯, 코믹과 유머러스의 전무함은 일반 관객들이 식상하기에 충분했다. 초보 감독다운 표현력의 부재와 허술한 조연급 캐릭터 설정은 영화를 이끄는 등장인물 장태영(김수현)의 목표를 방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리얼은 큐브 같은 영화다. 언젠가는 나타날 정답에 대해 관객들은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다. 그 흐름이 다소 진부하지만 흐름을 쫓아가다가 혹시 놓친다고 해도 영화는 관객들에게 ‘꼭 이것이 정답이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김수현은 영화에 대해 두 명의 장태영이 나오지만 둘 다 가짜다. 둘의 과거가 엇갈려 있고 어딘가에 가려져 있다. 그게 바로 함정이다. 그 함정이 ‘매력적이다’고 말한다. 분명 리얼은 김수현의 말처럼 관객들의 두뇌를 자극시키고 지속적으로 상상하게끔 도와준다.

대규모 카지노 시에스타 소유주 장태영(김수현)은 초등학교 때부터 극도의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내고 결국 사람을 죽이고 일찍이 깡패가 됐지만 대학까지 졸업했을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지녔다. 태영은 해리성 기억상실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안에는 또 다른 자아가 하나 더 있다. 프리랜서 르포 기자다. 태영의 고통과 괴로움의 근본은 바로 그 기자였다.

영화 23아이덴티티처럼 이 영화는 주인공의 분열된 자아와 비극적인 결과를 거론한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에서와 같이 분열된 인간의 마음을 악으로 표현했다.

리얼은 한 남자에게 두 개의 자아가 있고, 하나의 자아를 모방하려는 또 다른 육체 사이에 누가 진짜냐를 두고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그러나 자아가 분리되고 카지노를 둘러싼 음모가 벌어지면서부터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김수현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자아와 분리된 또 다른 자아 연기를 분명히 다른 색깔로 표현했고 연기의 강약조절과 호흡, 딕션도 클리어했다. 또한 복잡한 플롯임에도 불구하고 리얼의 가장 큰 마력은 바로 미장센이다. 자아와 또 다른 자아의 대결사이에 흑백톤에서 보여주는 미스테리한 배경, 미장센과 공간, 화려한 퍼포먼스와 액션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리얼의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카지노 홀, 펜트하우스, 치료실 등은 클래식과 모던함을 뒤섞은 듯한 미묘한 시각적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리얼은 아주 동적인 것보다 슬로우모션을 통한 정적인 극사실주의를 표방했다. 몽환적이고 기괴스러운 스타일은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과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믹스한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서사는 분명히 철학적이고 심오하다. 다만 플롯의 복잡함과 관객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가 부족하다보니, 감독이 추구하려는 컬트적 팬덤은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1인에 주목되기보다 기괴한 캐릭터, B급 유머코드, 컬트적 요소들이 잘 복합됐으면 어떨까라는 아쉬움과 더불어 뻔한 조연 캐릭터들을 유입시켜 복잡한 내러티브를 추구한 것이 영화 실패의 원인으로 보인다. 관객들이 정말 원하는 단 한 가지, 카타르시스가 생략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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