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를 달아보는 도구인 ‘저울’이 기독교 성경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아보자.

잠언 24장 12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고 했듯이 저울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 그리고 믿음을 측량하는 심판의 말씀”이다.

사무엘상 2장 3절에서도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라 행동을 달아보신다”고 했다.

욥은 “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욥 31:6)”고 하며 자신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 믿음이 진실한가의 여부에 따라 경하면 바람에 날려가는 쭉정이에 비유하고 신실하면 알곡 신앙인으로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시 62:9)”는 말씀이 있다. 그 판단의 기준이 세상 사람의 눈과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 5장에 보면 벨사살 왕은 세상의 부귀를 누렸으나 우상을 섬기고 도리어 자신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나타난 손가락이 벽에 글씨를 쓰기를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즉 그가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보였고 그 날 밤에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또 저울은 어떠한 추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잠언 11장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는 말씀이 있다. 그 판단의 잣대에 따라 공평한 추는 진리의 말씀이 되며 속이는 추는 사단의 비진리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잠 21:2)”하신다고 했으니 천국과 지옥, 구원과 심판의 갈림길에서 신앙인이 택해야 할 방향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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