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전라북도 무주에서 지난달 24일 개막한 2017 세계태권도연맹(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대회의 역사적 의미는 바로 개회식에서 북한의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이 시범공연을 펼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WTF 행사에서 ITF 태권도가 시범공연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잠시 이 두 기구의 역사를 반추해 보자. WTF와 ITF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를 기반으로 한 국제태권도연맹이다. 뿌리는 같지만 WTF는 남한의 주도로 세계화됐고 ITF는 북한이 주도해 북한 태권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계 태권도 시장이 두 개의 연맹으로 나뉘게 된 것에는 역사적인 사연이 있다. ITF는 국군 장성 출신이자 1960년대 대한태권도협회장이었던 최홍희씨에 의해 1966년 서울에서 창설됐다. 최홍희씨는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갈등을 겪고 1972년에 캐나다로 망명했다. 이후 ITF의 남한 영향력은 줄어든다. 대신 최홍희씨는 캐나다에서 북한에 ITF 사범들을 파견하며 왕래했고 이후 ITF 태권도는 북한이 주도하게 됐다. 남한은 이에 맞서 대한태권도협회장 출신인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1973년에 WTF를 만들었다.

북한이 ITF를 통해 먼저 태권도를 세계화하려고 노력했지만 현재 세계태권도의 주도권은 사실상 남한으로 넘어왔다. 최홍희씨라는 원조를 확보했지만 북한의 여건 상 태권도가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WTF는 현재 200여개의 회원국에 전 세계적으로 8000만명이 넘는 수련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IOC로부터 공식 국제기구로 인정받았으며 올림픽 정식종목에도 채택됐다. 반면 ITF는 동남아시아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등 회원국이 100개 정도로 알려졌다. 수련 인구도 WTF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인 것으로 파악된다.

남북한의 태권도는 뿌리는 같지만 40년 넘게 각자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WTF와 ITF의 태권도는 겨루기나 품새, 용어, 경기 규칙 등 다양한 차이가 있다. 양쪽의 특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WTF 태권도는 스포츠의 성격을 띤 반면 ITF 태권도는 격투기 성향이 강하다. WTF 태권도는 머리와 몸통에 호구를 착용하고 맨발로 겨루기를 한다. 주먹으로 몸통을 때릴 수는 있지만 얼굴을 가격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반면 ITF 태권도는 경기 때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장갑과 신발까지 사용할 수 있다. 주먹으로 얼굴을 때릴 수도 있어 박진감이 넘치고 실전 싸움에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WTF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발차기가 화려해지고 조금 더 스포츠화 된 반면 ITF 태권도는 무도 태권도의 원형을 좀 더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전에서 각자의 룰로 맞붙는다면 얼굴 가격이 가능한 ITF 방식의 태권도가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실제 ITF 태권도의 겨루기(맞서기) 영상을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태권도의 대련과는 다르고 오히려 UFC 같은 실전 격투기의 느낌이 난다. 덕분에 ITF 태권도를 배운 격투기 선수들이 실전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일본의 입식 격투기 이벤트인 K-1 챔피언을 지낸 바다 하리다. 모로코 출신인 바다 하리는 한때 ITF 태권도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전에서도 태권도 기술을 종종 써 국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북한의 경우 군대에서 주로 격술이란 특수훈련만 진행해 오다 이것이 태권도의 이름으로 사회에 확산된 사례로 보면 된다.

분단 이후 남북한이 스포츠 대회를 앞두고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던 경우는 열 차례가 넘었다. 그러나 실제 성사된 건 단 두 차례였다. 남북한은 1991년 2월 체육회담을 통해 그해 열렸던 지바 탁구세계선수권과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 단일팀 구성을 합의했다. 한국 현정화와 북한 이분희가 앞장선 탁구 단일팀은 1991년 탁구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우승했고 축구 단일팀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8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종합스포츠 대회에선 한 번도 단일팀을 구성해 나간 적이 없었다. 남한과 북한은 64년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84년·88년 올림픽,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때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이견과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북한은 베이징올림픽을 4년 앞둔 2004년 2월 원칙적으로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지만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견을 보여 또다시 단일팀 구성이 불발됐다. 평창올림픽을 눈앞에 둔 현 시점에서 다시 스포츠를 통한 통일의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이번 북한 태권도 선수단의 모습에서 그 아름다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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