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 있는 한국전통 정원 희원의 사계절 (출처: 호암미술관 홈페이지)

‘호암미술관’과 ‘희원’을 찾아가다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경기도 용인에서 가볼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보통 에버랜드와 민속촌 등을 손꼽는다. 둘 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인데 좀 더 한적한 곳이 있는지 묻는다면 에버랜드에서 가까운 ‘호암미술관’과 한국전통정원 ‘희원’을 소개한다. 에버랜드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10분간 이동하면 호암 미술관과 희원에 도착한다. 시끌벅적한 놀이동산보다 호숫가 근처 한산한 곳에서 가족 단위나 연인과 함께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을 가보면 좋겠다.

◆꽃길만 걷게 해줄게 ‘행심화경’

‘호암미술관’에는 한국전통정원인 ‘희원(熙園)’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로 ‘꽃길만 걷게 해줄게’라는 말을 자주한다. 희원을 산책하다 보면 이런 비슷한 말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서예가 창암 이삼만이 쓴 ‘행심화경(行尋花徑)’이란 글귀다. 희원은 봄과 가을에 오면 그 정취를 크게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봄에는 벚꽃과 진달래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이룬다고 한다. 봄에는 희원에서 호숫가를 바라보면 산에 흰 벚꽃이 눈이 내린 것처럼 절경을 이룬다는 것. 아쉽게도 탐방을 간 이날은 벚꽃은 볼 수 없었다.

희원에는 두 정자가 있다. 정자에 올라 서 풍광을 바라보면 마치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 병풍 같다. 여기에 ‘차경(借景)’의 전통 원리가 있었다. 한옥에서는 창을 창으로 보지 않았고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액자로 여겼는데 이를 차경이라 한다. 두 정자에서 바라본 정원과 멀리 산의 경관은 차경의 원리에 의한 움직이는 자연 그림이었다.

◆자연물과 사람의 조화를 염원해

▲ 호암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작품들. 화조도(맨 위), 이인성의 가을 어느날, 고가구 연상 (출처: 호암미술관 홈페이지)

희원은 우주와 자연의 운행 이치를 담고자 했다. 동양에서 말하는 음양론에 기초해 음과 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됐다. 희원의 정 가운데에는 넓은 잔디밭과 연못이 있어 하루 내내 햇빛이 내리며, 이곳을 양지바른 곳이라는 의미로 ‘양대’라고 한다. 그 옆으로는 소담한 마당이 있는데 수목으로 그늘져 있고 작은 연못이 밤에는 달을 품는다 해서 ‘월대’라고 한다. 음양이 한 곳에 있고 모든 자연물과 사람들이 조화롭기를 염원하는 뜻이 있다.

희원의 중심인 주정에는 법연지(法蓮池)가 있다. 이곳에도 의미가 있는데 네모난 형태는 ‘땅’을 연못 안 의 네모난 섬은 ‘땅의 신’을, 그 섬에 있는 나무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연못 안의 섬이 원인 경우에는 ‘하늘’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정원은 연못 하나에도 하늘과 땅, 사람을 이야기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희원에는 아기자기한 모습도 있다. 작은 동산이나 정원, 뒤뜰을 뜻하는 ‘후원(後園)’에는 작은 화단과 장독대, 우물 등을 표현해 놨다. 창덕궁의 후원은 규모나 아름다운 가치가 우수해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고 한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지만 희원의 담벼락도 봐야 한다. 희원의 담은 아름답게 장식이 붙여진 ‘꽃담’이다. 이곳에는 중국 진시황이 그토록 원했던 영원한 생명,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뜻하는 십장생(열 가지 장수하는 것)이 그려져 있다. 십장생으로 불리는 해와 달, 물, 산, 돌,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이 조화롭게 벽화로 표현돼 있다.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의 염원

희원은 1997년 5월에 개원해 전통정원의 멋을 살리면서 자연의 이치와 원리를 표현했고 곳곳에 석탑과 불상 등이 있어 종교적 색채도 있다. 무릉도원, 왕생극락, 천국 등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이상향이 느껴졌다.

호암미술관은 1982년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예술을 통한 문화 창조의 꿈과 통찰력을 전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병철 회장은 살아 있을 때 종교와 신에 대한 24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신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신은 인간을 창조했는가’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등의 질문을 했다. 호암미술관과 희원에는 이병철 회장이 고뇌했던 신과 종교,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이 담겨있는 듯 했다.

미술 전시관에는 일제시대부터 해방 이후 본격적인 현대미술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근대미술의 대표작들이 있었다. 박수근과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의 서양미술의 개념을 우리의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삶의 현장’ ‘작가의 아틀리에’ ‘가족’ ‘근대의 풍경’ ‘꿈과 이상의 세계’라는 5개의 소주제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을 통해 근대미술을 살펴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선조들의 지혜와 미감을 담은 연상, 책장, 사방탁자 등의 조선시대 목가구와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등의 도자기, 불교미술과 추사 김정희의 서예 등도 전시돼 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희원을 지나 호숫가 근처로 나왔을 때는 가족 단위와 연인들이 돗자리를 펴고 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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