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가박㈜스플러스엠

간토대학살 당시 실화 다뤄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 박열
일제 만행 전 세계에 외치다

제작진, 서적·기사 자료 통해
철저한 고증, 사실 90% 담아
조선 청년들 용기·패기 그려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지난 5월 12일 일본 정부는 각의(국무회의)에서 간토(關東,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예정이 없다”는 답변서를 채택했다.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22살의 청년 박열은 존재 자체만으로 간토 대학살의 증거였다. 영화 ‘박열(이준익 감독)’은 9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간토대학살 사건이 벌어졌던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시즈오카(靜罔)·야마나시(山梨)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12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다. 34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사망자와 행방불명이 총 40만명에 달했다.

다음날 출범한 제2차 야마모토(山本)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민중의 공포 분위기는 더욱 확산했다. 일본 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일본인을 죽이기 위해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격분한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무고한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무조건 체포·구타·학살했다. 이 사건으로 6000여명 이상이 학살됐다.

외교를 의식한 일본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일본의 계략을 눈치 챈 박열은 일본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스스로 동지이자 자신의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한다. 박열은 사형을 각오하고 시작된 재판에서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이 돼 조선 청년의 패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독립투사를 주제로 한 여느 상업영화처럼 화려한 볼거리나 액션이 없다. 박열이라는 인물을 영웅으로 과대하게 포장하거나 추켜세우지도 않는다.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있는 그대로의 아나키스트 박열의 모습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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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육체야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이 발언처럼 죽음도 불사한 채 일본 제국의 부도덕한 태도를 추궁하며 일본 내각을 손에 쥐고 놀았던 박열의 모습은 가감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다. 메가폰을 잡은 이준익 감독은 고난도 액션과 화려한 의상 없이 일제 강점기 당시 청년들 나아가 조선인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정신을 보여줬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통해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신념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는 “‘나쁜 일본인’ ‘억울하지만 선량한 조선인’ 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로 영화를 그려내고 싶지 않았다”며 “참혹한 역사를 묻으려는 일본 내각을 추궁하고 적극적으로 항거했던 박열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과연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일제 강점기의 박열만큼 세상을 정면으로 보고 살아가는지 되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한명도 허구가 아니다.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을 위해 실제 야마다 쇼지가 쓴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 후세 다츠지의 ‘운명의 승리자 박열’,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과 아사히 신문 기사 등을 검토해 90% 이상의 사실을 영화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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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은 “정말로 일본의 대법정에서 조선인 청년이 저런 일을 벌였다고?”하며 기염을 토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픽션이 아니라 실화다.

내용이 진중하다고 해서 영화가 무겁지만은 않다. 예심판사 ‘다테마스 가이세이(김준한 분)’와 박열, 가네코 후미코 간 대응 장면은 실소를 터트리게 한다. 박열이 조선인 관복을 입고 등장했을 땐 일본 정부에 한방 날린 것처럼 시원하고 재밌다.

영화의 주인공은 박열,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일본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김인우 분)’다. 믿고 보는 배우 이제훈은 말할 것도 없으며 영화 ‘동주’에서 ‘쿠미’ 역으로 얼굴을 알린 최희서는 박열 못지않은 캐릭터로 일본제국을 부정했던 강인한 여성을 연기했다. 영화가 끝나면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을 검색할 정도로 말이다. 앞서 ‘암살’ ‘덕혜옹주’ ‘동주’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 김인우는 재일교포 3세로 완벽한 일본인 역을 소화했다.

가장 불량한 청춘의 불꽃 같았던 실화가 담긴 영화 박열은 28일 개봉돼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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