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배움으로 민족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교육과 발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또 필리핀의 민다나오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다바오시’ 역시 인구가 150만 명에 달하지만 글자가 없다. 이같이 지구촌에는 말은 있으나 글자가 없는 민족이 6000종족에 이른다. 68억의 세계인구 가운데 7억 명이 이에 해당한다.

한글사랑 나라사랑 국민운동본부(한나본)는 이 ‘다바오시’를 대상으로 한글교육을 실시한다. 하루에 세 차례씩 한국 노래도 부르고, 휴대전화로 한글자모를 연습하기도 한다.

한나본은 한글 세계화 초석을 위한 ‘한글 문화 대강대국 선언’을 했다. 세계의 많은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입 모아 인정하기 때문에, 이 같은 전략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장 큰 걸림돌은 세계가 아니라, 과연 한글이 세계화할 만한 가치를 가졌는가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다’라고 우려한다. 즉 우리의 무지함이 역시 문제라는 얘기다.

무문자(無文字) 민족이 아니라할지라도 유럽이 로만 알파벳이라는 통일된 표기법을 쓰듯이 여러 나라의 말을 한글 계열의 표기법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세계 많은 민족들이 자기의 글이 어려워 문맹률이 절반 가까이 되는 민족도 많다. 이러한 민족들이 선망하는 글이 바로 한글이며, 문맹률이 높은 이들에게 한글로 새로운 표기법을 만들어 보급한다면 인류문명과 문화는 큰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말은 있어도 문자가 없다는 것은 곧 빛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이 한글 보급 즉, 글자 보급의 역사(役事)는 인류문명에 새로운 빛을 던지는 매우 가치 있는 일미며 귀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인류역사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지배와 피지배의 연속관계속에서 거듭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깨우친 자와 깨우치지 못한 자와의 관계이며, 나아가 주종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즉 문자가 관건이라는 의미다.

이 문자의 힘은 인류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강하고 위대한 원천이 된다.

그 좋은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살아있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5세기에 와서 유럽은 오랫동안의 문화적 쇠퇴와 정체의 늪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고전학문과 지식의 부활이다. 그것은 인문주의라고 불리운 지적(知的)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문필가들에 의해 시작된다.

새로운 인문주의 정신과 그것이 일으킨 르네상스는 인쇄술의 발명에 힘입어 유럽전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인쇄술의 발명은 문자해독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지적자극 내지 욕구를 제공하게 된다. 그 결과 맨 먼저 불똥이 튀긴 쪽은 종교다. 종교의 어두운 곳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종교개혁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유럽은 세계사적 차원에서 볼 때 적어도 오늘날까지는 지배적 입장에 서 있었고, 아시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등 지역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들의 지배하에 있었다 해도 무리한 표현은 아닐 게다.

그 예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 창제 의미에서 밝혔듯이 서문에서 ‘백성들의 의사를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새 글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 말은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백성들의 의사가 바르게 표현될 수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즉 특정인을 제외하고는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는 답을 얻게 되며, 문명과 문화는 백성의 몫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글이 창제된 후에도 일정기간까지는 한자에 밀려 사용되지 않다가 한글 사용이 본격화 되므로 백성들은 비로소 감겼던 눈이 떠지고 나라도 발전하고 부강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본이 천명한 ‘한글 문화 대강대국 선언’, 이는 시기적으로 볼 때 참으로 합당한 선언이다. 그러나 이 선언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선 ‘문화’의 참의미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다. 15세기에 진행된 ‘문예부흥(文藝復興)’ 역시 ‘문화’를 뜻하는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다시금 일으켜야 할 것도 바로 문화 즉, 제2의 문예부흥이기 때문이다. ‘문화(文化)’란 ‘글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말은 있어도 글이 없으니 ‘문화’는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말을 보이는 글로 나타내 변화시키는 일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15세기 문예부흥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종교가 하늘의 뜻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해 개혁의 길을 걷게 했던 것처럼, 작금의 시대가 다시금 이 강산에서부터 일어날 제2의 문예부흥기라면, 오늘날도 보이지 않는 하늘의 뜻을 먼저 깨달은 이가 써내려가는 글 즉, 하늘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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