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A씨는 요즘 딸 결혼 때문에 고민이다. 취업 준비생인 딸이 함께 공부하며 사귀던 남자친구와 사이가 깊어졌다. 임신까지 했다는 얘기에 A씨 부부는 처음엔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둘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을 허용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더 불러오기 전에 서둘러 결혼식을 치러야겠다고 부부가 의견을 모았으나 마침 윤달(閏月)이라는 것이었다. 24일부터 내달 22일까지가 약 3년 만에 돌아온 윤달. 부부는 윤달에 결혼을 하지 않는 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때문에 식을 미루자니 딸의 몸이 무거워지고 있고 식을 하자니 흉한 일이 생길까봐 걱정이었다. 과연 윤달에는 결혼을 피해야 하는 걸까.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

윤달에는 어떤 일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윤달에는 파묘를 해도, 혼례를 치러도 거리낌이 없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A씨 부부는 딸 결혼식 날짜를 윤달에 잡아도 문제없을 것 같다. 동국세시기라는 책이 있다. 조선 헌종 15년, 1849년에 홍석모가 우리나라의 세시풍속들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윤달은 부정이나 액이 없는 달로 여겨 개장 이장을 하거나 수의를 미리 지어놓는 풍습 등이 소개돼 있다. 이는 윤달은 ‘손 없는 달’ ‘귀신이 하늘로 다 올라가 버려 쉬는 달’이라는 민간의 인식 때문이었다. 조정에서는 동국세시기에 소개된 풍습을 근거로 삼아 윤달에는 묘를 이장해도 좋은 때라고 백성들에게 권유도 했다. 이에 따라 윤달에는 묘를 건드려도 무탈하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전파됐다. 이런 연유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와서는 민간에서 윤달을 받아들이는 인식이 엉뚱하게 바뀌게 된 것 같다. 즉, 매장 이장과 같은 애사 흉사를 하는 때가 윤달이라고 받아들여 혼례와 같은 경사스런 일은 피하는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하게 돼 풍습마저 변한 것이라고 한다.

올해도 윤달을 맞아 개장(改葬) 화장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공공 화장시설 예약은 예약이 거의 찬 상태라는 얘기가 들린다. 무속신앙이나 불교 쪽에서는 윤달에는 특별히 날을 받지 않고 기도해도 좋다고도 말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윤달이 든 해에 절에 세 번만 가면 모든 액이 소멸된다’는 믿음이 있다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 윤달에는 절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보시를 하는 부녀자들의 발길이 한 달 내내 이어졌다고 한다. 윤달에 절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를 지내는 이들도 있다. 살아생전에 지은 죄, 켜켜이 쌓인 업장을 풀고 미리 스스로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것이다.

천문학적으로 윤달은 일 년 열두 달에 더해 여벌로 늘어난 한 달이다. 태음력상의 날짜가 계절과 한 달 정도 맞지 않는 시기가 있다. 이를 조절하기 위해 두 번 거듭되는 달이다. 음력은 약 29.5305일을 한 달로 본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초승달에서 보름달을 거쳐 그믐달로 변하는 주기이다. 음력은 29일 달과 30일 달로 날짜와 달의 모양을 맞춘다. 우수리 0.0305일은 33개월간 모았다가 29일인 달에 하루를 더한다. 이런 방식으로 달력을 만들면 매년 양력과 약 11일의 차이가 발생한다. 음력은 1년 날짜 수가 354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차를 줄이려고 2∼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두는 것이다. 다음 윤달은 2020년 4월이다. 윤달엔 땅에 대한 귀신의 간섭이 소홀해진다는 생각이 우매하게까지 느껴진다.

이에 따라 윤달이라고 결혼식을 못 할 이유가 없다. 9일, 10일을 ‘손 없는 날’이라고 해 이사 길일이라고 하는 것도 무슨 뾰족한 근거가 없다. 삼재(三災)도 마찬가지다. 한 해 인류의 4분의 1이 삼재에 해당되는 셈이다. 해당자가 너무 광범위하기 짝이 없다. 태어난 띠를 기준으로 그 오행의 힘이 순환되는 해 3년을 삼재라 한다. 하지만 역학이론적으로도 사주의 기준은 띠가 아니고 태어난 날 일간이다. 예컨대, 돼지띠, 토끼띠, 양띠, 즉 해묘미 생은 목 오행인데 뱀해, 닭해, 양해, 즉 화 오행 3년을 만나면 힘이 빠지니 유의하라는 것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삼재풀이를 빙자해 거액이 오고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만약 해당 띠의 오행은 힘을 약화시켜도 그 해의 오행이 태어난 날을 이롭게 한다면 어떻게 풀이할 것인가. 역사적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풍습은 혹세무민에 가깝다. 오히려 불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몸, 말, 생각으로 인해 생기는 재앙, 혹은 탐내는 마음 탐(貪), 화내는 마음 진(嗔), 어리석은 마음 치(痴)가 우리가 늘 유의해야 할 삼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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