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22일 통신비 절감대책을 내놓았다. 요금 할인율을 20%에서 25%로 올리고 노년층과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한 요금 감면, 보편요금제 도입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번 통신비 절감방안의 핵심인 요금 할인율 상향 조정은 2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선택약정 할인은 휴대폰을 구입할 때 받는 단말기 지원금 대신 일정 기간 약정을 맺으면 통신요금을 할인해주는 제도로 자급제 폰과 중고폰 이용자의 차별 대우를 막는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정부는 이번 대책으로 단기적으로 1조 6000억원, 임기 내에 공공 와이파이 확충과 보편적 요금제 도입으로 총 4조 600억원의 통신비 절감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소비자는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불만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업자는 정부가 사실상 민간사업자의 요금을 직접 규제하고 요금 할인을 선택하는 가입자가 급속히 증가하면 그만큼 매출과 이익이 급감할 것이라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야당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추진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정치권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대책을 내놓은 통신 주무부처인 정부의 속내도 개운치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통신사업자들의 반발이 심했던 기본료 폐지는 철폐하고 주로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알뜰폰의 활성화를 위해 전파사용료 감면제도 연장, 도매대가 인하, 보편적 요금제 도입 시 도매대가 특례 등 지원책으로 알뜰폰 업계의 고사 위기는 넘겼다는 점이다.

요금을 인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목표는 바람직하다. 상품가격이든 서비스요금이든 인하되면 소비자나 이용자들이 혜택을 보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시장 가격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구시대적인 방식으로는 중장기적으론 소비자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反)시장 질서의 재앙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가격과 요금은 정부가 직접 개입할 것이 아니라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

통신비 인하와 관련해서 보면 단말기 지원금 확대는 제조업체와 통신사가 공동으로 분담하지만 요금할인 비용은 통신사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인위적인 요금인하로 통신사들의 투자 여력이 줄면 5G 통신망 등 차세대 기술 투자가 줄어들게 되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ICT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킬 우려도 있다. 이는 기업과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자 피해로 돌아온다. 또한 통신사의 매출과 이익의 급감은 투자축소와 지연으로 통신업계 전체의 일자리가 감소되고 이는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정책인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역행하는 것이다.

국정기획위가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기본료 완전 폐지와 같은 정책추진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이다. 더욱이 통신비 인하문제로 국정기획위가 주무부처의 업무보고를 거부하는 등의 행태는 시장경제원리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국정기획위는 앞으로 기본료 폐지, 단말기 지원금 분리 공시제도, 제4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단말기 자급제 등은 정부와 시민단체, 이동통신사로 구성될 ‘사회적 논의 기구’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통신비를 내리면 소비자단체 등과 절대 다수인 이용자가 좋아하고 소수인 통신사업자와 시장경제원리를 중시하는 일부 경제전문가들만 반대한다. 통신비 인하문제를 정치권의 포퓰리즘 논리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어떤 가격이라도 정부가 직접 개입해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과거 정부 때 행정력을 동원해 52개 생필품을 특별 관리했지만 오히려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2배 이상 상승한 악순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기를 바란다. 앞으로 정부는 복잡하게 얽힌 이동통신의 유통구조 개선과 중소기업 중심의 제4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등 경쟁 확대와 공정경쟁 유도로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통신비 인하 방안을 다시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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