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5월 3일 불편한 몸을 움직여 북한의 김정일이 중국에 갔다. 능률사회에 사는 우리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가지만 그는 빠른 비행기를 안 타고 더딘 기차를 타고 갔다. 번번이 그랬다. 그에겐 그런 버릇이 있다. 고소공포증 때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뻔한 비밀주의도 김정일의 또 다른 버릇이다. 그의 일거일동이 이해당사국들의 첩보망에 의해 감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요한 언론의 취재 활동에 의해 어차피 알려질 것인데도 대외적으로 미리 발표하지 않는다. 절대 권력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신변안전이 그 주된 이유로 알려진다. 이번 중국 방문도 그러했다.

지구상의 가장 폐쇄된 사회인 북한이 그러는 것은 애써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개방 지향’의 중국마저 그렇게 뻔한 것을 쉬쉬하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들의 국제적 위상이나 체모에 걸맞지가 않다. 우리는 김정일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그런 우리에게 그의 방문을 귀띔조차 하지 않은 것은 섭섭한 정도가 아니다. ‘혈맹의 관계’인 중국과 북한 사이에 이어져온 그 같은 오랜 관행을 감안해도 그러하다. 이렇게 하기로 하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양국관계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이 4월 30일 상하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에게 천안함 사태에 대해 설명하고 조사결과가 나오면 미리 중국에 알려주겠다고까지 했었다. 한중관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전향적이고 투명한 조치였다. 이에 후진타오 주석도 천안함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했으며 한국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평가한다고 화답했었다. 이를 두고 발전된 한중관계에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할 수 없었다. 날로 가까워져야 하고 또 가까워지는 중국이 경제대국다운 체모와 국격(國格)을 갖추어 감을 느끼고 반겼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허탈한 실망감을 맛보아야 했다.

김정일의 중국방문은 천안함 침몰사태의 여파가 점차 국제적인 압력으로 그의 목을 조여옴을 느낄 만한 시점에 이루어졌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 얘기가 나돈 것은 한참 된 일이지만 하필 천안함 사건이 국제 문제화된 시점에 실현된 것은 자연스럽게 보기 어렵다. 미루어졌던 것을 실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다. 간 김에 북한에 절박한 경제 원조를 비롯한 권력세습, 6자회담 문제 등이 끼워 넣는 의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이번 방문은 그보다는 천안함 사태라는 긴급한 ‘별건(別件)의 방문’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시각일 것이다.

김정일이 다급할 때 마땅히 기댈 곳은 ‘혈맹(血盟)인 중국말고는 없으며 진짜 속마음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그를 겉으로라도 반겨줄 유일한 나라도 중국이다. 이런 것을 이해하더라도 중국은 핵문제로 북한을 제재한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의 하나로서 국제적인 룰(Rule)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천안함 사태의 유력한 혐의자인 북한 김정일이 국제적인 공조로 천안함 사태의 조사가 진행 중인 때에 중국을 가는 것은 적절한 행보가 아니다. 그를 맞아들이는 중국의 입장도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적인 공조의 틀에서나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상식의 허(虛)를 찌르듯이 김정일은 유일한 후원국이며 대부의 나라인 중국에 갔다. 눈치 없는 방문인지 서로 호응(呼應)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기와 상황에  안 맞는 부적절한 방문인 것은 틀림없다. 환영인파도, 그를 반기는 깃발도 나팔소리도 없는 철길, 톈진과 베이징을 잇는 고속도로. 베이징의 중심로를 질주하는 이상한 방문이었다. 정상 회담과 만찬의 건배 장면의 공개도 없는 내밀한 방문이었다. 이것은 필시 중국이 민감한 한국을 배려한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감추거나 배려하거나 드러내거나 말거나 전체적으로 받는 느낌은 유쾌하지가 않다. 경제대국이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거대한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일을 감싸고 도는 것은 아주 작은 국익이며 소의(少義)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에 간 김정일은 다급한 마음을 감추고 짐짓 여유를 부렸다. 베이징으로 바로 달려가는 대신 엉뚱하게 샛길로 빠졌다. 단동에서 중국의 떠오르는 공업항구 도시 발해만의 다롄(大連)으로 갔다. 거기서 하루 저녁을 묵고 다시 톈진(天津)으로 가 다롄에서와 같이 여기저기를 굳이 남의 눈을 피하지 않고, 아니 일부러 보라는 듯이 30대 100대씩의 고급 승용차 행렬을 이루어 시찰하고 다녔다. 마음은 베이징 콩밭에 가 있을 것이지만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비공개’ 연출이었다. 그는 피바다 가극단까지 뒤따라오게 했다. 그는 이 모든 ‘비공개된 공개’ 행사를 통해 우리와 세계에 외치고 있다. ‘나 봤지. 핵보유국 김정일의 건재를. 그리고 알았지. 중국과의 혈맹의 관계를. 당신들이 중국을 함부로 할 수 있어. 나를 어쩔 것이야’라고-.
우리는 보았다. 냉엄한 주변 정세를 새삼 깨달았다. 중국의 ‘무게 중심’이 아직은 혈맹 북한에 기울어져 있음을 보았다. 중국도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우리가 더 빠른 속도로 중국에 다가간 만큼은 아닌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에 너무 초조하거나 과민할 것은 없다. 어차피 한국과 중국은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는 한국을 빼고는 동북아의 안보와 평화를 얘기할 수 없는 나라, 한국을 빼고는 서로의 경제협력과 국익을 논할 수 없는 나라, 바로 그런 한국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결집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다. 밀어내어도 다가 올 것이다. 섭섭한 마음을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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