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원장(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지난 5월 2일 동갑내기 톱스타 장동건과 고소영이 이른바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천안함 장병들에의 추모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서 어느 곳에서는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요 복된 의식이 거행되었으니 과연 우리의 삶은 희로애락의 범벅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세간의 관심은 과거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식 이후 최고의 인기 배우의 결합이라는 데 쏠려 있다. 그들의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옷차림, 그리고 하객들로 참석한 또 다른 스타들에 모든 카메라가 향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니라고 하고, 부산 국제영화제나 여느 레드 카펫보다 더 뜨겁고 빛났다는 말도 들린다.

항상 반복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왜 대중들은 스타의 일거수일투족과 거취에 그리 많은 관심을 보내는 것일까? 아울러서 사람들은 세기의 결혼식을 보면서 어떠한 생각과 느낌을 가질까? 아마 어르신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은 행복한 것이고, 자손을 낳아서 오래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스타라고 다를 것이 뭐 있어, 이제라도 결혼해서 다행이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아직 미혼의 처녀 총각들은 생각이 복잡해질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멋지고 로맨틱한 결혼식을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멀지 않은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순간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도 들 것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저 사람들은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결국 자기들끼리 결혼하는구나. 나와 같은 사람도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골라서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질시와 함께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남선녀의 결합이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이루어지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다. 긍정적인 면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고 싶은 ‘꿈’의 욕망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러움을 넘어서서 질시의 감정으로 지켜보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심한 자기 비하나 사회 비난으로 발전한다면 정신적으로 병든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병들어 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축하해 주지 못하고, 배 아파하거나 저주를 내린다. 특히 내가 잘 알고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질투와 비교의 콤플렉스에 빠져서 축하를 외면하는 분위기라면, 더욱 병든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가 발전하려면 그리고 사회 공동체 모두가 행복하려면 ‘다 함께 잘 살자. 그래서 우리 노력합시다’가 되어야 하지 ‘다 함께 못 살자. 그래서 우리 평등해집시다’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깐 ‘질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질투를 느낀다 함은 사실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너’는 이러이러한데 그렇다면 ‘나’는?).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관심 끌기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친구 또는 형제자매보다 저를 더 예쁘게 봐 주세요’). 열등감의 표현이기도 하다(‘나’는 ‘너’에 비해서 부족한 점이 있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다). 질투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바로 경쟁심 또는 승부욕을 자극해서 자기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나’도 ‘너’처럼 잘 되고 싶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제언한다. 세기의 결혼식을 축하하라. 대한민국의 현안 중의 하나인 저(低)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데 일조를 하였다. 그리고 동참하라. 세기의 결혼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멋지고 행복한 결혼식을 하라. 혹시 마음 한 구석에서 질투심이 느껴진다면, 이를 계기로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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