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천지=송범석 기자] ‘구조조정’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존재한다. 무엇인가를 얻는 대신 다른 무엇인가를 잃거나 버릴 수밖에 없는 삶의 절대 진리 앞에 구조조정은 필요악이다.

구조조정을 당하는 입장이나 구조조정을 직접 지시하는 입장이나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구조조정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와 책임 회피다. 동료 한 사람이 구조조정 당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남겨진 사람은 진정 승자인가?

저자는 넌지시 ‘다른 사람의 삶을 구조조정하는 데에는 너나없이 다 똑같은 가해자일 뿐’이라고 읊조린다.

주인공 ‘나’는 킬러지만 사람을 죽여 본 적은 없다. 직접적인 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그럴듯한 살인을 ‘창조’한다. 살인 계획은 치밀하고 촘촘하다. 완벽한 살인을 위해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모든 요소를 활용한다.

누군가에게는 인슐린 과다 복용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스 질식에 따른 편안한 죽음을 안내한다.

사실 별 볼일 없던 ‘추리소설’ 작가였던 ‘나’는 지나가는 개 한 마리 못 죽일 정도로 소심하고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회사’로부터 처음 받은 주문은 ‘추리 소설’ 한 편이었다. 소설 속 피해자의 소상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도록 죽이는 것이 그가 받은 첫 과제였다.

그렇게 소설 속 인물들을 죽이고 난뒤, 실제로 똑같은 인물이 자신이 설정해 놓은 똑같은 상황으로 죽었다는 뉴스를 접한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만 ‘자기 합리화’를 통해 양심의 묵직함에서 달음질친다.

이후 ‘나’는 자신이 사랑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현경의 죽음에 직접 관여하게 된다. ‘나’는 그녀가 자살한 후 유서를 통해 그녀의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다는 사실과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작정 현실을 피해 콩고로 간다.

그러나 콩고에서 그가 온몸으로 마주한 현실은 더 치명적이다. 그곳에서 ‘나’는 수억 명에 달하는 숨겨진 살인자들을 발견한다. 누군가 자원을 독점해 부를 쌓을 때, 그 자원 부족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는다. 분명 사람은 죽지만 살인자는 한 사람도 없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는 답을 내린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로 ‘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가 아는 모든 사람을, 심지어 자신의 아이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혼자 남는 꿈이다. 꿈에서 깨면 ‘나’는 혼자 숨죽여 운다.

“피비린내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또 몇 사람 몫의 삶을 거름으로 뿌려야 하나…”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또렷하다. 비명대신 가늘고 질긴 울음을 토해내는 약한 것들의 환영이 가슴을 파고들어 자기 합리화의 혈류를 뿜어대는 검은 심장을 움켜쥔다.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에 충실한 그대여, 저들의 죽음은 누구의 탓인가? 사람이여, 어째서 더운 피를 쏟아버리고 타인의 아픔에 침묵하는가?”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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