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천지=송범석 기자] 2200여 년 전 ‘분서갱유’로 악명을 떨친 진시황은 수많은 책을 불태웠다. 처절한 ‘책의 학살’이었다.

그 후로도 책을 대량으로 불태우는 일은 계속 발생했다. 2001년 3월 서양의 한 종교 단체는 신을 모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판단된 책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 서적 중에는 허밍웨이와 칼릴 지브란의 작품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과거에 그랬듯,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작은 ‘책의 학살’은 계속되고 있다.

책을 학살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과거에는 주로 이전 왕조나 적을 부정하기 위해 책을 불태웠다. 특히 이전 정권을 잡았던 자들이 자기과시나 선전을 위해 쓴 기록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 다른 이유는 정보의 차단이다. 진시황이 책을 불사른 이유는 보통 유교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또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진시황은 사람들 사이에 정보를 차단하면 통치하기 쉬울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민정책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으로 책을 불태웠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20세기 책의 학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발생한다. 나치는 유대인을 멸종시키려고 유대 문화를 함께 없애려 했다. 세르비아 역시 보스니아에서 이슬람교도들의 이슬람문화를 깨끗하게 쓸어버리려 했으며, 이라크도 쿠웨이트의 문화를 학살했다. 그리고 그 죽어가는 문화의 중심엔 항상 서적이 있었다.

저자는 “20세기의 문헌 자료 파괴는 전쟁터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신중하게 저질러진 일이었다”고 강조한다. 극단적인 정권들은 자기들의 신념과 다른, 또는 그 신념을 위한 유토피아 건설에 방해가 되는 사상을 없애려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이데올로기에 의해 책이 사라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4장에서 8장까지 이어지는 유명한 사건들은 책이 죽음을 맞는 현장으로 안내한다. 나치가 유럽에서,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마오주의자들이 중국문화혁명기에 그리고 중국공산당이 티베트에서 책을 학살한 사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레베카 크누스 지음 / 알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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