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박열’에 ‘박열’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스틸. (제공: 메가박스㈜플러스엠)


역할 위해 매질·단식 서슴지 않아
“영화 잘돼서 다른 작품도 봐주길”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청초하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제훈은 남자가 이렇게 청초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맑고 순박했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박열’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다. 자신은 바르고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의 생각과 실체는 달랐다.

영화 ‘파수꾼’으로 주목받은 뒤 ‘고지전’ ‘건축학개론’ 등으로 이름을 알리고, 드라마 ‘시그널’ ‘내일 그대와’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이제훈이 이번엔 일본 제국을 뒤흔든 조선 최고의 불량 청년 ‘박열(1902.03.12~1974.01.17)’로 분한다.

영화 ‘박열’은 9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간토대학살 사건이 벌어졌던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제훈의 이미지처럼 인터뷰도 깔끔하고 담백하게 진행됐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보통 작품을 보고 나서 아쉬운 점이나 ‘다시 내가 돌아가면 다르게 찍었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요. 감히 자평하기는 힘들지만 이번 작품은 저의 모든 것을 보여준 같아요. 제가 빚어낸 그릇이라면 전부를 쏟아 냈어요. 보시는 분들은 부족한 점을 보실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 이상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 영화 ‘박열’에 ‘박열’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스틸. (제공: 메가박스㈜플러스엠)


패기 넘치는 22살의 박열은 일본 제국의 한복판에서 항일운동을 하려고 남루한 생활을 하지만 조선인을 조롱하는 일본인에게 칼을 휘두르는 등 기세만은 당당했던 청년이다.

이제훈은 “작품을 촬영하면서 인물을 표현할 때 모자르지도 넘치지도 않도록 감정선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실존 인물을 보여준다는 나름의 사명감 때문”이라며 “그가 들려주려는 메시지가 저를 통해서 보이기에 조심스러웠다. 영웅적으로 미화되는 부분에서 극도로 경계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심도가 깊었던 작품인 것 같다. 짧은 촬영 기간임에도 여운이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제훈은 박열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하고 실재 인물이라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호탕하고 당당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는 “관동대지진 사건으로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죽이는 만행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때 박열은 어린 나이임에도 기계와 용맹함으로 맞서 싸운다”며 “조선인들한테는 영웅, 일본인들한테는 대역죄인 이였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을 연기해 부담이 컸다”고 밝혔다.

▲ 영화 ‘박열’에 ‘박열’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스틸. (제공: 메가박스㈜플러스엠)


“사실 영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인물의 이름조차 몰랐거든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인물, 사건 등 모든 것이 고증에 근거했으며, 내용의 90% 이상이 사실이라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박열선생님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글을 읽고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 평전을 읽으면서 인물을 탐구해나갔어요.”

그리고 그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당부했다. 이제훈은 “이 작품을 보고 건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해결되지 못해 남아 있는 사실을 잊지 말고, 관심을 가져 한국 사람으로서 개개인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라며 “이 영화가 잘돼서 다른 역사적 사실을 담은 작품들도 많이 보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완전한 박열이 되기 위해 이제훈은 고문신도 100% 실제로 촬영했으며, 극단적 단식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 경찰에게 고문당하는 장면에선 “가짜처럼 보이면 안 된다”며 곤봉세례를 자처했다.

▲ 영화 ‘박열’에 ‘박열’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 스틸. (제공: 메가박스㈜플러스엠)


이제훈은 “신의 텍스트는 ‘박열이 단식 투쟁을 벌이자 간수가 밥을 먹이는 데 먹지 않으니 짓밟는다’ 두줄이었다”며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간수 한사람은 박열의 양팔을 잡고, 한 사람은 밥을 숟가락도 아닌 손으로 목구멍까지 쑤셔 넣어서 억지로 먹이고, 거부하면 때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훈은 “상대 배우에게 걱정하지 말고 사정없이 치라고 주문했다. 한번에 찍어야 할 장면이기에 과감하게 진짜 맞을 것을 선택했다. 카메라를 속여서 찍고 싶지 않았다”며 “단식도 연기로 하지 않고 실제 단식을 통해 몸소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 막바지에는 피골이 상접해서 쓰러질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인물을 가까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 모든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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