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문재인 정부 출현과 동시에 벌써 5명의 북한 주민과 군인들이 대한민국으로 탈출해 왔다. 지난 13일에는 북한 병사 1명이 중부전선에서 우리 군 GP(소초)로 귀순했다. 이 병사는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탈북자들이 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동경하게 돼 귀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이 귀순한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9개월여 만이다. 이에 앞서 이달 초 동해상에서 표류하다 우리 당국에 구조된 북한 선원 4명 중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표류 중 구조된 북한 선박 선원이 귀순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 2015년 7월 이후 2년여 만이다. 이들은 부자지간으로 50대 남성과 20대 아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18일 새벽에도 서부전선 임진강 하구로 20대 초반의 북한 주민이 사생결단으로 휴전선을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다.

그뿐이 아니다. 23일에도 중부전선을 통해 북한군 1명이 귀순해 왔다. 군인만 벌써 2명이 약 한 달 사이에 우리 측으로 탈출해 왔다. 과연 이와 같은 현상들을 문재인 정부 출범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까. 현재 80%대를 유지하는 문재인 정부의 인기는 북한에도 빠르게 알려진다. 남한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정권은 북한 주민들도 동경하기 마련이다. 사실상 현재 북한 주민들은 문화적으로는 한국 사람들과 함께 호흡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수시로 통화하고 송금도 한다. 함흥일대에서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 장수 이후 또다시 남조선에서 함흥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출현했다”고 환영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고 한다.

녹음이 우거진 5~6월은 휴전선에서 탈북이 용이한 계절이다. 자연 지리적 조건이 이들의 탈북을 용하게 한다면 중요한 또 다른 유출 요인도 있을 수 있다. 현재 20대 초반의 북한 군인들은 대부분 ‘장마당 세대’로 노동당의 혜택과 무관하게 성장한 신세대들이다. 이들은 최전방에서 개고생하며 평양의 소수 귀족들을 지켜줘야 할 명분도, 의무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초부터 강조되어 온 ‘참수작전’의 영향으로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북한군에 내재해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기회를 엿보다 녹음을 이용해 탈출의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한 가지 더, 우리 통일부는 지난 4월 북한군이 탈북해 올 경우 AK 소총 한 정에 1000만원을 준다는 새로운 보상책을 공개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수시로 확인해 주고 있다. 1000만원이면 1만 달러로 북한에서는 평생 만져볼 수 없는 돈이다. 북한군에서 중좌인 대대장의 월급이 겨우 5000원인데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1달러도 채 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미화 1달러는 북한 화폐로 8300원이다. 북한 군인들은 자신들의 몸에 항상 붙어있는 총을 든 채 남행열차에 오르면 인생이 달라지는데 무엇을 주저할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줄을 잇는 북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어떻게 정착시키고 통일의 역군으로 준비하느냐 하는 문제가 문제인 정부의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햇볕정책 10년과 압박정책 10년 뒤에 탄생한 기대와 희망이 잠재된 정권이다. 과거 햇볕정책 시기 탈북민들은 소외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왜? 정부가 평양에 잘 보이려고 탈북자들을 억눌렀다는 것이다. 황장엽 선생을 그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은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상대함에 있어 과거 압박정책과는 다른 합리적이고 유화적인 태도로 가려는 의지는 벌써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3만 탈북민들을 소외시키고 정부가 통일을 논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북한과 대화도 하랴, 자꾸 넘어오는 탈북민들을 정착도 시키랴, 문제인 정부가 대북정책 및 통일정책에서 직면하게 되는 난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줄을 이어 남행열차에 오르는 탈북민들을 막을 힘은 북한 당국에도, 남한 당국에도 없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선택권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따라서 목숨도 주저하지 않는다. 문제인 정부는 지난 대선에서 많은 탈북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들에게 ‘탈북민정착촌’ 건설 등을 약속했다. 탈북민정착촌은 화려하거나 웅장할 필요는 전혀 없다. 통일을 예상해 북녘땅이 가까운 휴전선 근방에 설치하여 오육십대 탈북민들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면 된다. 그 생산물을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으로 구입해 준다면 굳이 다른 예산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탈북 남행열차의 정거장을 정부는 준비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곧 통일열차가 되어 북으로 다시 돌아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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