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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흥인지문 구간] 성벽 끊겼지만 역사 숨결 지닌 도성
장수경 기자  |  jsk21@newscj.com
2017.06.25 10: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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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은 도시의 경계이면서, 도성민의 삶을 지켜온 울타리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도성의 기능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한양도성은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발굴과 복원과정을 거치면서 잃었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와 관련, 한양도성 전 구간인 18.6㎞를 직접 걸으며 역사적 가치를 몸소 체험하고자 한다.

 

   
▲ 흥인지문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양도성 순성길에 꼭 도성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낙산구간(혜화문~흥인지문)까지는 도성이 길게 이어졌지만, 흥인지문 구간(흥인지문~장충체육관)은 단절돼 있다.

21일 방문한 서울 흥인지문 구간이 실제 그랬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양도성 전 구간인 18.6㎞ 중 도로나 사유지 개발로 사라지거나 훼손된 구간은 5.5㎞다. 이 중 흥인지문 주변 63m, 광희문 주변 42m등 105m 구간은 도로 가운데 석재로 한양도성 구간임을 알리는 시범사업을 지난해 마무리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벽이 없다보니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검색해야 했다. 이를 통해 한양도성의 일부분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기로 했다.

◆사대문인 ‘흥인지문’

첫 시작점인 흥인지문은 1396년(태조 5)에 세운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동쪽 문이다. 지금의 문은 1869년(고종 6)에 다시 지어졌다. 당시 한양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세웠다. 흥인지문은 서울의 숭례문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성문이었다.

   
▲ 청계천 옆으로 오간수문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성벽과 이어진 축대에 아치형의 통로를 내고, 그 위로 문루를 세워 성문을 만들었다. 서울의 성문 가운데 문루를 2층으로 만든 것은 숭례문과 흥인지문밖에 없다. 문루는 문을 지키는 장수가 머무는 곳으로 유사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 역할을 했다.

문루 바깥으로는 벽돌로 된 담장(여장)과 나무판으로 된 창문을 설치해서 적을 막는데 유리하게 했다. 흥인지문 문루의 맞춤 구조는 간단하고 장식이 많은 19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했다. 또 흥인지문 앞에 적을 막기 위한 반달 모양의 옹성(甕城)을 둘렀는데, 이는 도성의 성문 가운데 유일했다.

흥인지문 앞에는 전차도 다녔다. 인근에 세워진 ‘전차차고 터’ 표지석에 따르면, 이곳은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전차 종점으로 차고가 있던 곳이다. 또한 종로행이나 청량리행 손님이 전차를 갈아탔다.

   
▲ 오간수문 ⓒ천지일보(뉴스천지)

◆임꺽정 탈출한 ‘오간수문’

흥인지문에서 3분 거리에는 청계천이 있다. 그 옆으로는 오간수문이 남아있었다. 오간수문은 조선시대에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에 놓인 수문(水門)이다. 다섯 칸의 수문으로 이뤄졌다는 뜻에서 이름 지었다. 성종 12년(1481)까지만 해도수문이 3개였으나, 후에 몇 차례 증축을 거쳐 5개의수문으로 확장했다고 한다.

오간수문은 조선시대에 도성 안에서 죄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나가거나,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통로로도 이용됐다. 명종 때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 무리도 도성에 들어와 전옥서(典獄署)를 부수고 도망갔는데, 바로 오간수문을 통해서였다.

오간수문과 가장 가까운 다리인 오간수교. 현재 다리 아래에는 체제공이 영조에게 바친 시인 ‘준천가(濬川歌)’가 적혀 있다. 이 시에는 장마 때마다 범람하는 청계천 준설 공사를 단행한 영조를 칭송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 이간수문 ⓒ천지일보(뉴스천지)

청계천과 DDP(동대문 디지털플라자) 사이에는 이간수문도 있다. 2개의 홍예문으로 지어져 붙여진 이름이며, 오간수문의 형태를 축소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구)동대문운동장 발굴 당시 발견됐다.

◆성벽 남은 ‘광희문’

DDP를 지나 동대입구역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으면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광희문(光熙門)이 나온다. 과거에는 시구문(屍軀門)·수구문(水口門)이라고 했으며, 이 문을 통해 시신을 내보냈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이곳에 고쳐지었다.

   
▲ 광희문 ⓒ천지일보(뉴스천지)

광희문 옆으로는 성벽 일부가 남아있다. 흥인지문부터 길게 이어져야 했는데,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게다가 광희문부터 장충체육관까지도 성벽은 단절됐다. 장충체육관으로 향하는 내내 옛 모습의 성벽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장충체육관부터 시작되는 남산 구간(장충체육관~백범광장)에는 성벽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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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박동철
2017-06-26 09:49:11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삭제하기 신고하기
서울도심에 저런곳이 있으니 낭만이 넘
서울도심에 저런곳이 있으니 낭만이 넘친다. 삭막한 도시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는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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