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진 작가와 ‘침묵’. (제공: 박주헌) ⓒ천지일보(뉴스천지)

수많은 말풍선 형상에 넣어
“작품 보고 치유 받았으면”
일반 회사원서 작가의 길로

선택 후 찾아온 이별·가난
10개월간 하루 1끼 먹기도
2015년 한해에 전시 60회
극과 극 평가 받으며 발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상상은 칼보다 강하다. 상상은 총보다 강하다. 상상은 돈보다 강하다. 상상은 집보다 강하다. 상상은 차보다 강하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말풍선은 만화에서, 주고받는 대사를 써넣은 풍선 모양의 그림이다. 주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쓰이지만 머릿속 생각을 드러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 팝아티스트 호진 작가는 대중에게 익숙한 기호인 말풍선을 빚은 팝아트를 선보인다. 최근 경기도 파주의 한 갤러리에서 호진 작가를 만나 작품에 담긴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작품은 수십개의 말풍선이 모여 구성됐으며, 멀리서 보면 하나의 그림이 된다. 호진 작가는 생각들을 오랜 시간 흙으로 빚어 형상화한다. 이 작은 생각들은 작가가 좋아하는 색으로 구워지고 칠해져 하나의 기호가 된다. 호진 작가는 “제 개인적인 생각들이다. 스쳐 가는 생각을 기억해뒀다가 빚는다. 기독교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라고 하는 것처럼 저는 하나의 수행처럼 말풍선을 만든다”며 “신이 흙으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 했듯 나는 흙으로 생각을 빚어 동시대 사람들이 사랑하는 형상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 호진 작가가 ‘젊은날의 초상’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제공: 박주헌) ⓒ천지일보(뉴스천지)

그의 작품은 익숙한 기호로 구성돼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다.

이 같은 작품이 나오기까지 고통도 많았다. 그는 “연인, 친구 등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고 나니 이런 작품이 나왔다. 매일 말풍선 빚고 있으니까 제 친구들은 저보고 미쳤다고 그랬다”며 회상했다.

30대 초반까진 광고대행사에 다니며 취미로 작품을 만들었다. 나름 잘나가는 실력자였지만 미술을 그만둘 수 없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60대에 은퇴하고 나서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건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는 미술을 택했다.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호진 작가는 “결혼하기로 했던 여자 친구가 떠나갔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어머니한테도 죄송했다”며 “그때 생각만 하면 미술을 더 관둘 수 없다. 많은 것을 잃고 어렵게 얻은 꿈”이라고 전했다.

“10개월 동안 하루 1끼 먹고 고기도 끊었어요. 손가락이 잘린 친구의 병문안도 가지 못했죠. 작품을 완성하고 친구를 만나 보여주니 미쳤다고 하면서 절교하더라고요. 근데 전 그만큼 절실했어요. 지금은 그래도 전시도 하고, 대중에게 알려지니 절교한 친구가 ‘그림 언제 줄 거야’ 하면서 손을 내밀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비타민’은 이 시기 태어났다. 그는 “불면증에 걸려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가려다가 모아놓은 알갱이로 작품을 만들었다”며 “‘비타민’을 보면서 앞길을 나아가자 생각했다. 작품을 완성하니 바로 잠이 왔다. 그 이후로 불면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작품 ‘비타민’은 눈으로 먹는 약이다”고 말하며 웃었다.

일부러 상처를 많이 받으려고 전시를 2015년 60회 열었다. 전시마다 대중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호진 작가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경험을 쌓았다. 그 안에서 배움도 있었다.

호진 작가는 “대접해야 할 사람이 있고, 제가 대접을9 받을 때가 있더라. 이젠 방법을 안 것 같다”며 “이는 작가들의 고통이다. 미술 분야의 여러 가지 고통 속에서 사라지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에너지가 저한테 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안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호진 작가는 클레이로 말풍선을 빚은 다음 매니큐어로 색을 입힌다. 이후 형상에 생각을 담아 작품을 완성한다.

▲ 호진 작가의 ‘혜안’ ‘침묵’ ⓒ천지일보(뉴스천지)

작품 ‘혜안’은 큰 눈 동공 안에 검은색 반짝이로 칠해진 말풍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사람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올바로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세상을 보는 눈은 같지만 발현(發見)하는 눈은 다르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동심 시리즈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작가의 욕구가 담겼다. 그는 “어른이 되며 잃어버린 동심, 처음의 마음에 대해 사람들에게 환기시켜 주고 싶었다”며 “보는 이에게 순간이나마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려, 모든 일을 시작할 때의 두근거림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작품은 저에게 있어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말풍선 하나하나에 마음이 담겨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치유되죠. 대중들도 제 작품을 보고 마음을 치유하고 밝고 긍정적인 생각 하셨으면 좋겠어요.”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