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1950년 한국전쟁 - 수많은 피란민 속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남한의 할머니 - 한 맺힌 기도와 눈물로 보낸 50년 세월 - 90세가 돼 남북이산가족 만남을 통해 재회한 이북의 아들 - 케이크에 촛불을 꽂고 어머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떠나는 60대 아들 - 통곡하며 발길 돌리는 아들에게 또 언제 만나겠느냐고 푸념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어머니 - 끝내 헤어지며 흔드는 어머니의 닳고 쭈글쭈글한 손…’

눈물은 만국공통의 언어라고 했던가.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IOC 총회가 열린 2003년 7월 2일 밤(한국시간) 체코 프라하. 결선투표 결과 불과 3표 차로 한국은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에 실패해 슬픔과 회한에 잠긴 날이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한국민이, 그리고 평창이 모처럼 세계의 심금을 울린 날이기도 했다. 한 편의 한국 영상물이 낯모르는 외국인들의 코끝을 찡하게 한 것이다. 현지에서 수백명의 IOC 관계자와 보도진을 울먹이게 한 프리젠테이션. 그것은 다름 아닌 남북이산가족의 뼈저린 아픔을 소개한 내용이었다. 필자는 참석자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분단 상황에 처한 한반도의 현실을 처음 피부로 느끼게 됐다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경색된 남북관계는 해빙(解氷)될 것인가. 그렇다. 이 정부에서는 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해방 72년, 6.25한국전쟁 발발 67년. 한 많은 세월 떨어져 지낸 남북이산가족 한 가족 한 핏줄은 반드시 상봉해야 하며 남북은 화해·협력의 길을 열어야 한다. 최근 민족문제 해결 자주성의 원칙을 천명한 6.15공동선언과 조국통일 3대원칙을 천명한 7.4남북공동선언에 관해 남북한 당국이 서로 화답하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6.15공동선언은 남북문제의 주인이 우리 민족임을 천명한 것”이라며 앞으로 대북정책은 우리가 주도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정인 외교안보특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북 도발 중단 시 한국 내 전략자산과 한미연합훈련의 축소도 미국 측과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특보의 발언은 새 정부 외교안보방침이 특히 자주성 측면에서 한·미 관계를 재정립한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문제는 시기상의 미묘함이다. 때마침 첫 한미정상회담 코앞이다. 미국인 대학생 웜비어가 북한 억류 17개월 만에 혼수상태로 귀국해 숨지자 미국 내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 연기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해 “한국이 은혜를 모른다”고 했다. 북핵해법에 관해서도 한미 양국 간에 차이점이 노출되고 있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이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반면, 미국은 비핵화 이전에는 북한과 대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분명하고 강경하다. 탄핵위기에 처한 트럼프다. 그가 위기모면용 카드나, 혹은 막대한 미국 군수물자 소비를 생각해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긴장국면을 끌고 나가지 않겠느냐고 호사가들은 말한다. 미국경제위기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일정 기간 명분축적이 끝나면 대북선제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도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니 남한 정부는 빠지라”고 하는 상황이다. 북한 당국은 북미수교 등 ‘큰 것’을 얻어내려고 할 때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 직접 상대해야 하며 현재의 단일지도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도 팽팽한 남북대결 국면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보는 것일까. 물론 북한은 최고존엄 한 마디면 외교정책의 물꼬가 확 바뀔 수 있겠지만 말이다.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이끄는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23일 김포공항으로 입국한다. 문 대통령과 만나는 기회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친서 휴대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상의 남북특사 역할이 된다. 반년 가량 남은 평창동계올림픽이다. 이를 역사적인 평화올림픽이 되게 하는 방안부터 대화테이블에 올라야 한다. 최소한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진 2002월드컵 때처럼 잔치상 재뿌리기는 없어야 함은 물론, 평창올림픽 북한 참여와 남북한 분산개최가 협의돼야 한다. 남북한 당국은 평창협의가 마중물이 돼 이산가족상봉과 개성공단재개에도 합의하게 되길 바란다. 이어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북핵문제 남북화해·경제협력 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통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젖힐 수도 있다. 남북한 주민들의 경제와 복지를 위해서도 필연이다. 남북대화와 화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