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외고, 자사고, 국제고(이하 편의상 특목고로 칭함)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최근 경기도 교육청이 특목고 폐지를 발표했고 서울시 교육청도 따라갈 모양세다.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이들 학교가 설립취지나 목적에 맞지 않게 고액 입시학교가 되어 명문대 입학생이 늘어나 고교 서열화를 만들고, 일반고 교실은 면학분위기가 저하되어 ‘고교 간 수준차가 심화된다’는 원인을 들었다.

지난 10년간 서울대 합격생을 출신 고교별로 살펴보면, 10년 전에는 일반고 학생의 비중이 77%였지만 2016학년도에는 46%로 반토막 났다. 반면 특목고 합격자 비율은 10년 전 18%에서 44%로 급상승했다. 정계, 관계, 법조계 안팎에서 이들 고교 졸업자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막강한 동문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육사의 ‘하나회’ 같은 인맥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요직을 독점하며 또 다른 지배계층으로 고착화 할 우려도 있다.

그런 문제점을 다 인정해도 특목고 때문에 일반고가 피폐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특목고 학생들을 일반고 교실로 옮겨 앉혀놓는다고 일반고의 면학 분위기가 특목고처럼 좋아질 리 없다. 현재와 같은 일반고의 시스템을 갖고는 그 어떤 대책도 ‘일반고 정상화’는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일반고의 시스템을 바꾸고 교사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특목고가 우수 학생을 ‘독점’ 하는 것이 큰 문제란 것에 공감하지만 학생에게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다. ‘독점’ 문제는 특목고의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고 추첨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개선해 나가면 된다. 특목고의 교육과정과 장점을 일반고에 접목시켜 일반고에서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도록 교육 환경을 갖춰주는 것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다.

일반고를 특목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상향평준화를 시킬 방법을 찾아야지 특목고를 폐지해서 하향평준화를 시키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인재육성 차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천재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대로 영재를 육성하는 교육 환경을 보장하는 것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선 필요하다. 자원이 부족한 대한민국은 인재를 키워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특화된 사립 고등학교는 존재하며 국가적으로 장려한다.

일반고의 교실 붕괴는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혼합돼 운영되는 학교 시스템이 문제다. 애초부터 공부에 뜻이 없거나 대학진학 의지가 없는 아이들을 대학입시에 맞춘 수업을 3년간 듣게 하는 것은 고통이며 낭비다. 그런 아이들이 점령한 일반고 교실에서는 교사들도 의욕이 사그라질 수밖에 없다.

일반고 교사들은 “‘내가 이러려고 교사를 했나?’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래, 이 아이들이 밖으로 돌면 사고밖에 더 치겠나?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에 만족하자’는 쪽으로 변한다”고 이야기 한다. 학습의욕을 잃고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한 학생과 교육의 방향과 목적을 상실한 교사가 모여 있어서는 일반고의 수준 향상을 기대하긴 힘들다. 대학진학을 원하고 공부를 원하는 학생들만 모아서 일반고를 운영하면 된다. 그러면 교사들도 자연스럽게 교재 연구나 수업 연구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고 일반고의 수준이 높아지면 굳이 특목고에 보낼 이유가 없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은 다양한 분야의 직업학교를 만들어 진학시켜야 한다. 직업학교만 졸업하고도 자기 분야에서 성실히 일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된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기술자가 돼도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들면 직업학교와 일반고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직업학교 졸업생을 사회에서 차별대우를 하면 이들은 결국 재수생이 되어 다시 대학 문을 두드리게 된다.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선 안 된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5년마다 새로운 교육정책이 만들어지고 기존 정책이 폐기된다면 미래 세대인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교육정책만큼은 정권과 무관하게 별도의 독립된 기구에서 연구하고 논의해서 결정하는 시스템이 갖춰줘야 ‘교육이 백년대계’란 말과 일치한다. 교육감의 정치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될 정책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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