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일보(뉴스천지)

어질다는 의미 담은 ‘난초향’ 가장 좋아해
향초 켜 불 밝히고, 향주머니 달고 문안
궁중 연말연시엔 ‘벽온단’으로 평안 기원
신라시대 남녀노소 빈부 상관 없이 사용
조선시대 ‘규합총서’ 읽고 민간서 향 만들어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끙, 다음 문구가….” 한 선비가 시를 짓다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문구가 떠오르지 않아서다. “안 되겠군.” 선비는 장롱을 열더니 향로를 꺼냈다. 주섬주섬 향을 지피더니, 자세를 반듯이 한 후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갔다.

◆선비도 즐겨 사용하던 향수

조선시대에도 향수가 있었다. 보통 선비들이 시를 짓거나 독서를 할 경우 향을 들이마셨는데, 이를 ‘훈목’이라 불렀다.

선비들이 가장 좋아했던 향은 뭘까. 바로 난초 향이다. ‘난초향이 풍긴다’는 말은 곧 어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비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안방에서 향 촛불을 밝혔다. 부모님에게 아침문안을 드리러 갈 때도 향주머니를 몸에 꼭 착용했다.

궁중에서도 향은 자주 사용됐다. 특히 연말연시에 사용하는 특별한 향이 있었다. 바로 ‘벽온단’이다. 섣달그믐인 제야에 임금께 진상하면 첫 새벽에 환약 형태의 향 덩이를 태워 올렸다.

일 년 내내 무사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악귀와 병을 막고자 하는 마음을 연기에 담아 올렸다. 임금이 신하에게 교지를 내릴 때도 향로에 향을 피웠다.

그렇다면 향은 누가 만든 걸까. 조선시대에는 향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그만큼 민간인도 쉽게 향을 만들 수 있었다. 조선시대 말 부녀자들의 생활 지침을 적은 책인 ‘규합총서’에는 향 만드는 방법이 잘 적혀 있다. 궁중에서는 향을 중요시 여겨 ‘향장’이라는 전문 기술자를 두기도 했다.

◆향에 얽힌 역사 속 이야기

향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 속에 잘 담겨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향수와 향로 사용 사례는 삼국시대부터 구체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 장군인 김유신(金庾信)은 향불을 피워 하늘에 맹세한 후, 그 향을 온몸에 스며들게 한 후 무술을 연마했다.

신라 진지왕은 도화녀(桃花女)와 7일간 방에 머무르는 동안 향을 살랐고, 눌지왕은 공주의 질병을 향으로 치료했다. 신라인들은 남녀노소가 빈부에 구애됨이 없이 향료를 주머니에 넣어패용했다고 한다.

삼국시대의 향수·향료 사용은 고고학으로도 입증된다. 고구려의 쌍영총 고분벽화 동쪽 벽에 아홉 사람이 걸어가는 그림이 있는데, 맨 앞에 가는 소녀가 향로를 머리에 이고서 두 손으로받든 장면이 담겨 있다.

혼례를 할 때도 향은 꼭 필요했다. 유교식 전통혼례를 ‘삼서육례(三誓六禮)’라고도 하는데, 전안청에 차린 향로 앞에서 신랑신부가 서약했다.

1123년(인종 1)에 고려에 온 서긍(徐兢)의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 궁중에서 사향·독누향·용뇌향·전단향·침수향 등을 사른다고 했다.

고려시대에는 향의 해외교역이 일어나기도 했다.945년(혜종 2)과 1079년(문종 33)에는 향유 50근과 220근을 각기진나라와 송나라에 수출했다. 이처럼 향수는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자주 사용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