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2년여 만에 고(故) 백남기씨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백씨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후송됐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지난해 9월 25일 사망했다. 당시 주치의는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표기했고 이를 두고 서울대 의대 재학생, 동문 등이 잇따라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일었다. 사인을 병사라고 기록한 것과 관련해 당시 서울대병원 측은 “일반적인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과 다르게 작성했지만 담당 교수가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진료를 시행했으며 임상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작성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15일 오후 서울대병원은 그간의 입장을 바꿔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로 수정하는 한편 외인사의 직접적인 원인도 경찰의 ‘물대포’라고 결론 냈다. 완고했던 서울대병원 측이 정권이 바뀌고 기관감사까지 받게 되는 처지에 몰리자 7일 윤리위원회를 열고 백씨의 사인을 ‘외인사’로 바꾼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담당주치의가 진정성을 가지고 작성했다는 ‘병사’는 결국 정권 눈치를 의식한 사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사인을 바꾼 것도 새로운 권력 앞에 수그린 것이라는 비난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번 사인 변경은 과거 의문사를 당한 수많은 민주화 열사들을 떠오르게 한다. 30년 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던 전두환 정권의 발표는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수많은 국민이 민주화를 부르짖다가 고문사를 당했음에도 권력 앞에 양심을 저버린 의사들로 인해 죽어서도 억울함을 당해야 했다. 30년 전엔 워낙 군사정권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때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의사들에게도 일말의 동정이 가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이번 백남기씨 사인 변경은 세월이 그토록 흘렀음에도 권력자의 눈치를 봐가며 진단을 내리는 의사들의 행태가 여전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씁쓸하다. 돈 없고 힘없는 국민은 죽어서도 억울한 진단서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의사들부터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고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실천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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