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삭제되지 않는 시간 - 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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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되지 않는 시간

이 옥

이별도 사랑이다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 서면
커서의 깜빡거림으로 다가온다

휴지통에 담긴 메일처럼
아주 떠난 게 아니다

비바람에 떨어지는 꽃잎도 붉은데

내 안에서 멈춰진 시간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시평]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결코 잊히지 않는 것들도 없지 않아 있다. 기억의 어느 깊은 자리에 숨겨져 있다가, 어떠한 계기를 만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문득 문득 고개를 드는 기억들. 그래서 이제는 모두 끝이 났어, 하며 이별을 고했건만, 그 이별이 이별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삶속에서 다가오는 경우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이별도 사랑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우리는 컴퓨터와 함께 산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편지 한 장을 써도 컴퓨터로 작성을 하고, 작은 문서 하나를 만들어도 컴퓨터로 작성을 하고, 또 컴퓨터에 내장을 한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속으로 쌓이는 전자 우편들. 그 전자 우편인 이메일을 읽고는 불필요한 것들은 마우스로 클릭을 해서는 휴지통으로 버린다. 버린다고 버렸던 그 이메일이 휴지통 안에 남아 있듯이, 내 안을 떠나지 못하는 시간들. 그래서 멈추어진 시간들. 

그 휴지통 안에서, 아니 내 기억의 보이지 않는 저장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남아 있는 것들. 멈추어진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구나. 빠져나가지 못하며, 문득 문득 고개를 내밀며, 아팠던 그 기억들을 다시 불러오고 있구나. 어쩌면 아팠던 만큼, 그 기억들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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