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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포커스] 인생 전반부는 금융전문가, 후반부는 역사 바로잡는 문화운동 예술가로
김현진 기자  |  yykim@newscj.com
2017.06.14 16: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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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애(지원) 대한제국선포120주년 준비위원장이 단오절을 맞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서울 인사동 바이올렛 화랑에서 열린 제2회 단오절 천제와 부채전시(기획·연출: 단산 정윤근, 권녕하)에 출품한 자신의 작품 ‘독도아리랑’ 시가 적힌 부채를 들고 있다. 정 위원장은 이 전시에서 ‘독도 아리랑’ ‘단오절 아리랑’ ‘을미 아리랑’ 총 3편을 출품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정미애(지원) 대한제국선포120주년 준비위원장

삼성생명 최연소 보험왕 출신
시서화 삼절에 시창까지 다재다능
“아리랑 대서사시로 역사바로잡기”
딸 손호정, 세계최연소 영화감독으로 엄마 일대기를 그릴 예정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자라온 환경에 큰 영향을 받거나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에 누구나 공감할 듯하다.

삼성생명 최연소 보험왕 출신인 정미애 대한제국선포120주년 준비위원장 역시 그렇다. 정 위원장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故 박성용 금호그룹 총수, 故박태준 포스코 회장, 정진석 국회의원의 부친 故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 한영우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등 5명을 꼽았다.

정 위원장은 삼성생명에서 20년간 근무할 당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직업의 개념을 배웠다고 한다. 직이란 직급, 업은 금융업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깨닫게 되면서 삼성에서 초일류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는 것. 박성용 총수와는 예술의전당 후원회인 목련회원에 가입하면서 그로부터 후원회 일을 장려하고 육성하는 일을 배웠고 그대로 실천했다. 또 박 총수로 인해 예술을 사랑하게 됐고, 예술인을 후원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태준 회장과 정석모 전 장관과는 아시아청소년문화교류협회 일을 하면서 정 위원장이 기획비서실장을 맡아 문화교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아리랑대서사시를 쓰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 현재 그는 2000여편의 아리랑 시를 썼는데, 그가 아리랑 시를 쓰는 목적은 오로지 우리 대한민국이 천손민족이라는 것과 모든 인류를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과 가치관을 국민들에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에게 영향을 끼친 나머지 한 사람은 민족사학의 거목으로 꼽히는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다. 한 교수는 민족사학에 대해 70여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강단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왜곡된 역사를 퍼포먼스를 통해 바로 잡고 싶다며 정 위원장에게 이를 맡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정 위원장은 2015년부터 시작한 2번의 명성황후추모예술제를 비롯해 제주서귀포 남극노인성축제서 제주아리랑을 부르는 등 전국 지자체와 역사·문화·예술 국내외 행사에서 다양한 아리랑시창과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그는 아리랑 대서사시를 작시하고 직접 작곡하고 노래까지 직접 다하는 아리랑대서사시창시인이다. 그는 예술인 중에서도 극히 드문 시서화(詩書畫) 삼절(三絶)에 뛰어난 예술인이다. 시, 서예, 그림은 물론 직접 작곡해 시창까지 하는 만능 예술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을 시서화삼절아리랑대서사시창 시인이라고도 소개한다. 아리랑을 주제로 시서화삼절을 하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당찬 자부심을 내세웠다.

   
▲ 정미애 위원장의 아리랑 시창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년 전 을미지변 120주년을 맞아 작게 시작했지만, 갈수록 모든 면에서 규모를 키워가는 명성황후추모예술제는 그에게 또 다른 전환기가 되게 했다. 당시 10월 8~9일 후원 파티 장소에서 을미아리랑 출판기념 행사를 하라는 제안에 그는 10월 8일이 을미지변이 발생한 날인데 어떻게 하겠느냐며 거절했다. 그러고 나서 꿈에 명성황후가 나타나서 자신을 위해 행사를 해달라는 부탁에 추모예술제를 기획해 개최했고, 역시 다시 꿈에 명성황후가 나타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명성황후와 고종황제가 함께 묻혀있는 홍릉에도 찾아가 절을 올렸고, 그 이후 좋은 일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그는 명성황후추모예술제를 하기 전만 해도 조용히 지냈으나, 예술제 이후 다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명성황후추모예술제가 그를 더 활발하게 역사문화운동 예술 활동을 하도록 도운 셈이다. 그는 올해 대한제국선포 120주년을 맞아 준비위원장과 이를 기념하기 위한 뮤지컬 총예술 감독을 맡아 제작 중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고조선제국, 신라제국, 백제제국, 고구려제국, 가야제국, 고려제국, 조선제국 등 세계를 호령해온 힘을 가진 민족이었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로 왜곡된 식민사관에 의해 잘못 알려졌고 이를 바로 잡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라 말했다.

또 “부족하지만 더욱 정진하고 갈고 닦아 하늘 민족, 천손의 노래며 조상들의 율령인 세계문화유산 아리랑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우리의 역사에 대해 글 쓰고 노래하고 아리랑을 시서화하며 시창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세상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음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정 위원장은 한때 아픔과 시련을 겪고 어지러워진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기 위해 12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약 2000편의 아리랑 시를 썼다. 그는 이같이 써놓은 시를 조만간 첫 아리랑 시집 ‘여의주 아리랑’을 출간한 후 순차적으로 시리즈로 낼 계획을 하고 있다. 그는 “저의 아리랑 시집을 전 세계도서관에 소장하도록 할 것이고, 국내외를 다니며 아리랑을 노래하면서 남은 생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에 바칠 것”이라는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 정미애(지원) 대한제국선포120주년 준비위원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정 위원장이 이 같은 모습으로 되기까진 역시 근본은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다. 정 위원장의 부친은 그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뿌리 깊은 나무(1976~1980년 발간된 월간 종합잡지)’를 정기구독 시켜줬고, 그가 7살 때 현존하는 근대 백과사전 중 가장 오래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사서 읽도록 지도했다. 그는 백과사전을 초등학교 시절 다보고 중학교를 입학했다. 그러다보니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됨과 동시에 탁월한 지식을 갖추게 된 그는 중학교 국사수업 때 선생님이 자신에게 대신 나와서 가르치라고 할 정도로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책을 읽도록 지도한 부모의 영향으로 정 위원장은 20대 시절에만 8000권의 책을 보는 책벌레였다. 심지어 사서삼경의 유교경서부터 금강경·법화경·화엄경 등의 불경, 성경까지 각 종교의 경서를 대부분 읽었다.

대구에서 자란 그는 86학번으로 영남대학교에 입학해 미생물학을 전공하게 된다. 그는 BIO를 해보겠다는 청춘의 큰 꿈을 안고 미생물학을 전공했으나, 당시 흔치 않은 전공을 살려볼 수 없던 그는 졸업 후 1990년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그는 남다른 끈기와 개척, 거기에 해박한 지식으로 최연소 보험왕, 최연소 최다수상자 등의 전무후무한 기록갱신을 하며 당시 업계 최초 연봉 10억의 보험왕으로 보험계의 독보적인 전설이 됐다.

금융전문가로서 현재까지 28년간 종사하고 있는 그는 불의와 타협하기 싫어해 금융계에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현재는 보험계에서는 페어플레이가 아닌 계약들이 많아 보험왕의 의미가 별로 없어졌다”면서 “특히 3년 전부터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대형 보험사들에 대해 지급하라고 외쳤고, 작년까지 칼럼을 통해 쓴 소리를 한 결과 보험사들이 지급하는 결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삼성생명에서 20년간 일하면서 많은 국내외 인맥을 형성했고, 이에 대해 “고기 잡는 법을 배운 것과 마찬가지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훈련을 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다방면 사업을 펼쳤다. 골드맥스 회사를 설립해 캐릭터제작 제조 유통을 했다. 티셔츠· 가방·모자·신발·핸드폰 액세서리·인형·문구류 등 4000가지 제품을 제작했으며, 출판은 물론 음반·애니메이션 제작을 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했다.

인생의 전반부를 금융전문가로 살아온 그의 희망은 남은 인생을 역사문화운동 예술가로 사는 것이다. 그는 “역사와 문화를 예술로 승화함으로써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융성시키는 일과 글을 쓰고 노래하는 그런 신명나는 삶을 멋있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 예술인으로서 이같이 살아가는 것도 갑작스럽게 터득한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타고난 재능도 있었다. 물론 노력의 결실도 한몫했다. 어릴 적 계성콩쿨과 전국새마을음악경연대회 등에서 성악부분 특상을 수상하고, KBS ‘누가누가 잘하나’와 MBC ‘꾀꼬리 노래동산’ 등 방송에 나가 재능을 선보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2006년 5월 12일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이혼조정이 성립된 날부터 지금까지의 걸어온 모든 역경과 애환의 삶을 살아온 실제 일을 그대로 영화화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현재 17세인 딸 손호정양이 6살부터 아버지 없이 엄마와 단 둘이 살면서 소통한 시간들을 보고 느낀 대로 6살 아이의 눈이 돼 감독이 되고, 정 위원장은 원작자로, 그리고 조감독은 전문기술을 가진 사람이 맡게 될 계획이다.

정 위원장은 “11년 전 이혼조정 전후 이혼사건을 처리해가는 과정에서 둘러싼 음모와 배신, 그리고 6살의 어린 호정이의 눈으로 보고 느낀 어린 아이의 마음과 12년간 아버지 없이 자라면서 느끼는 호정이의 마음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17살 손호정이 세계최연소 영화감독이 돼 리얼하게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에 따르면 ‘호정이가 열어가는 세상(가제)’은 어린아이 시선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영화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모영화사와 협의 중이다.

   
정미애 위원장이 딸 손호정양이 4살 때 함께 찍은 사진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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