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미래나 현재를 좌우하는 비전과 정책에 있어 용두사미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지만 정치권이 개입되면 여야가 밀고 당기느라 흐지부지되게 마련이다. 헌법 개정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두고서도 마찬가지다. 19대 국회와 지난정부 시절 개헌이야기가 국회 내에서 여러 번 나왔지만 정치권의 합의안이 나오지 못한 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20대 국회에서 많은 여야 의원들이 개헌에 관심을 갖고 지난해 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대선 등 큰 이슈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다. 2개월가량 반짝 활동을 하던 개헌특위는 지난 3월부터 잠정 중단된 상태로 오는 6월 30일이면 활동 시한 종료를 맞게 된다.

개헌은 국가 중대사인 만큼 국민과 국회, 정부가 모두 나서야 한다. 국회 내에 기 설치된 개헌특위(위원장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의 시한을 연장해 여야 합의로 개헌안 초안을 만들어 정부와 협의하고 국민공청회를 거쳐 최적의 최종 개헌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선 때 정당 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내년 실시되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붙인다는 공약을 했고, 광주 방문 시에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수록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또 지난 10일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도 개헌을 언급했던 것이다.

지난정부 때 박 전 대통령이 개헌 논의 자체가 블랙홀이라며 금기시한 것과는 달리 문 대통령이 먼저 개헌 분위기를 띄웠고, 이에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동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개헌 이슈가 다시 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가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재론할 기미를 보이는 가운데 내년 2월까지는 국민 참여를 거쳐 개헌 합의안을 도출하겠다는 로드맵을 만들고 본격 논의하겠다는 내용을 개헌특위의 여야 간사들이 약속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권이 약속한 대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는 개헌 일정은 묵시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의 논의로 개헌 방향은 대체적으로 정해졌다. 대통령의 임기와 권력 분산, 선거제도 개선, 분권을 통한 지방자치의 실질적 보장, 인권 강화를 위한 검경 수사권 내용, 경제민주화의 강화 등은 국민도 일반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제 1년 남짓한 기간 안에 민의를 바탕으로 한 최적의 개헌안이 만들어지는 일만 남았다. 국회와 정부에서는 주도권 싸움보다 큰 틀에서 보다 좋은 개헌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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